[맞춤법의 재발견]〈56〉“언제 한잔 하지” “한 잔만 하자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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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이라고 적어야 할까? ‘한 번’이라고 적어야 할까? 이런 질문에는 사안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함의가 들었다. 맞춤법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둘 중 하나가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로 사전을 맞고 틀림의 기준으로 삼는다. 사전을 찾아보자. ‘한번’은 사전에 실려 있지만 ‘한 번’은 사전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러니 ‘한번’이 맞는 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한’과 ‘번’과 관련된 띄어쓰기를 ‘한번’이라고 외워버린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항목이 두 개라면 경우의 수는 네 개다. 둘 중 하나가 맞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 틀리는 경우와 모두 맞는 경우도 있다. 이를 ‘한’과 ‘번’의 띄어쓰기에 적용해 보자. ‘한 번’이라는 띄어쓰기가 맞는 경우도 있고, ‘한번’이라는 띄어쓰기가 맞는 경우도 있다. 의미가 어떤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더 이해하기 쉬운 ‘한 번’부터 보자.

한 번만 해야 해, 두 번은 안 돼.

띄어쓰기의 원칙은 단순하다. 단어는 띄어 쓰는 것이다. ‘한’과 ‘번’을 띄어 쓴다는 것은 ‘한’과 ‘번’이 각각 단어여서 각자 뜻을 가진다는 의미다. ‘한’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수량상의 ‘하나’라는 의미다. 즉, 띄어 쓰는 ‘한 번’은 ‘두 번’, ‘세 번’과 짝을 이루는 말이다. ‘두 번’이나 ‘세 번’을 사전에서 찾아본 일이 있는가? 당연히 이런 단어는 사전에 나오질 않는다.

국어에서 각각의 단어들이 문장에 나올 때는 띄어서 적는다. ‘한, 둘(두), 셋(세)’이라는 단어와 ‘번’이라는 단어가 문장에 나올 때 이들을 띄어 적는 것이 우리말의 일반적 질서다. 일반적 질서로 예측되는 것은 사전에 실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전에서 찾아 나오지 않는다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거시적 구조에서 맞춤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띄어 쓰지 않는 ‘한번’은 ‘한’과 ‘번’이 독립된 의미를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둘이 합쳐져서 새로운 단어가 되었기에 붙여서 적는 것이다. 새로운 단어가 되었기에 당연히 사전에 실린다. 예를 들어보자.

이름이나 한번 물어봐. → 시도
언제든 한번은 만나겠지.
기회
한번 물면 놓질 않는다.
행동의 강조

밑줄 친 ‘한번’에서 ‘한’은 앞서 본 ‘둘, 셋’과 짝을 이루는 ‘한’이 아니다. ‘한’과 ‘번’이 합쳐져서 새로운 하나의 뜻을 가지는 단어가 된 것이다. 물론 아주 오래전에 ‘한 번’으로부터 출발하였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쓰이다가 새로운 의미로 굳어지게 되면, 하나의 단어가 된다. 그래서 오늘날 ‘한번’과 ‘한 번’은 달리 취급되는 것이다. 응용해 보자. 어떤 사람을 마주칠 때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언제 한잔 하지.

정말 딱 한 잔만 마실 것이라면 띄어 적어도 좋다. 하지만 ‘언제 술을 먹을 기회를 갖자’라는 의미라면 띄어 적지 않는 것이 올바르다. ‘한’의 의미를 독립적 의미로 보는가의 여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말이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한번#띄어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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