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기업정보… 전문가 첨삭 거친 자소서도 ‘불합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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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일자리를/청년이라 죄송합니다]2부 ‘노오력’ 내비게이션 <끝>
동아일보기자, 기업공채 門 두드려보니

최지선 기자가 이화여대 채용 게시판 앞에서 취업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취업준비생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기업 공개채용에 응시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최지선 기자가 이화여대 채용 게시판 앞에서 취업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취업준비생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기업 공개채용에 응시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네? 취업준비 다시 하라고요?”

1년 백수생활을 거쳐 지난해 동아일보에 입사한 기자에게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어 기업공채에 도전하라는 조금 황당한 미션이 떨어졌다. 특별기획 ‘청년이라 죄송합니다’ 취재팀원으로서 청년실업난을 몸소 체험하고, 눈높이에 맞춘 기사를 준비하자는 취지였다.

비(非)상경 전공, 토익 940점, 인턴 2곳(언론사), 핀란드 교환학생…. 학창 시절 내내 ‘기자 공채’만을 목표로 삼았던 기자의 스펙이다. 취업 준비카페에 접속해 보니 이 정도 스펙은 모자라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애매한 수준이었다.

‘혹시나 절박한 사람의 자리 하나를 빼앗으면 어쩌나’ 하던 생각은 기우였다. 국내 대기업 공채에 도전했지만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취업 준비기부터 구직자가 무엇을 해야 노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는지 알게 됐다. 이 탈락 경험과 구직일지를 취준생들에게 공유한다.

○ D-60일…승률 높은 직군은?

본보 취재팀은 ‘11회’(본보 5월 2일자 A10면)에서 취업준비생에게 ‘SWOT분석’을 제안했다. 구직에 앞서 자신을 알아보고 적합한 직무를 찾아야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다.

기자의 장점(S)은 다양한 아르바이트, 인턴 경험. 특히 식음료 매장에서 1년 넘게 일하고, 학원과 언론사 등 대인 업무가 많은 곳에서 주로 일했다. 단점(W)은 비상경계열 졸업생에 자격증과 수상 경력이 없다는 점이다. 넣어볼 만한 직군은 영업, 마케팅뿐이었다. “경영학 전공 안 하면 넣을 회사가 없어요”라며 울상 짓던 청년들 얼굴이 스쳐갔다.

아르바이트 경력을 살리면서 영업과 마케팅을 해볼 만한 곳은 대기업 식품 관련 계열사라는 결론이 나왔다. 기자는 4월 말 공채원서를 접수하는 SPC그룹의 계열사 ‘비알코리아’를 목표로 세우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 D-30일…희망고문과 팩폭 사이

언론사를 제외한 기업공채를 도전한 적이 없었기에 정보가 부족했다. 기자는 3월 말∼4월 초 각 대학에서 열리는 채용상담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인사 담당자들의 애매한 답변 탓에 머릿속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사 부스에서 마케팅 직군에 필요한 스펙 기준선을 묻자 상담직원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특히 ‘토익(TOEIC)’에 관해선 답변이 모두 달랐다. “870점인데 부족하죠?”라고 묻는 학생에겐 “기준선만 넘으면 전혀 상관없다”고 설명하더니, 뒤이어 “990점인데 가점을 받을 수 있느냐?”는 이에겐 “플러스 요인”이라고 답했다. 무엇이 진짜였을까.

여러 캠퍼스에서 채용상담회를 진행한 △△사는 ‘학벌 프리미엄’을 설명하는 데 차이가 있었다. 서울대에선 “이 학교 학점 3.0과 지방 4.5가 같겠느냐. 학벌은 당연히 본다”고 했지만, 중하위권 대학에서 만난 같은 회사 인사 담당자는 “학벌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모 씨(26)는 “애매한 정보로 희망고문만 한다”고 토로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측은 “채용설명회 만족도가 평균 63점(100점 만점)에 불과하다”며 “설명회에서 핵심 정보를 얻지 못한다는 불만이 반영된 결과”라고 전했다.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인사기밀을 모두 밝힐 수는 없지 않나”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담당자는 “공채 흥행이 곧 인사팀 실적이다. 많은 지원자를 유치하려고 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라고 귀띔했다.

○ 디데이…탈락이 남긴 교훈

정보를 모았으면 자기소개서 작성에 돌입해야 한다. 분량은 3000자였다. 이를 완성하는 데 5시간 20분이 걸렸다. 전문 컨설턴트의 첨삭을 거쳐 마감기한에 맞춰 지원했지만 결국 탈락 통보를 받았다. 실제 취준생만큼 절박함이 부족한 탓인지, 정말 실력이 부족했는지 분명하게 알 길은 없었다.

무엇보다 글 쓰는 게 생업인 기자가 자소서 단계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정주헌 더빅스터디 대표는 “글 솜씨가 좋다고 자소서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게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지원하는 회사의 핵심 사업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 채용설명회는 ‘커트라인 몇 점’을 묻는 자리가 아니라, 이런 정보를 캐내는 기회의 장(場)이다.

인크루트 이종서 주임은 “같은 채용설명회에서도 준비된 정도에 따라 얻어가는 정보가 천차만별”이라며 “예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대신 “○○사의 인재상이 정직·혁신인데 이 점을 평가하는 자기소개서 가이드라인이 있느냐?”와 같은 질문이 훨씬 영양가 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의미다. 돌이켜보니 기자는 이런 태도가 부족했다.

잠시나마 기업공채를 도전하면서 1년 전보다 더 어려워진 취업의 난관을 실감했다. ‘채용 흥행’을 위해 애매한 정보를 흘린다는 모 기업 내부자의 이야기를 들을 땐 화도 났다. “차라리 팩트폭력(냉정하게 사실을 말해서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을 해달라”던 구직자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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