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의 뉴스룸]검증은 ‘양념’이 될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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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정치부 기자
문병기 정치부 기자
5·9대선이 34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대선은 의미가 남다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촉발된 성난 민심은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국정 혼란을 수습할 비전과 보편적인 기준의 도덕성을 충족한 리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어느 때보다 후보에 대한 날카로운 검증이 필요한 대선이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하지만 장밋빛 정책 비전을 내세우고 서로를 치켜세우는 ‘포지티브’ 선거만으로 최선의 후보를 가려내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유권자들에게 후보에 대한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어떤 후보도 스스로 자신의 단점과 허물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에선 ‘네거티브’를 둘러싼 공방이 한창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주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측은 아들 준용 씨의 공공기관 특혜 취업 논란에 대해 “마! 고마해라”라며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관련 발언에 대한 공세를 네거티브로 규정하고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검증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잘못된 정보로 유권자들을 오도하는 구태는 지양해야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정보의 생산과 유통 주체가 다양해진 상황에서 후보자에 대한 근거 없는 한 줄의 비판은 곧바로 확산되지만 그 해명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철저한 검증을 위해선 ‘팩트’를 제시해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네거티브는 검증을 빙자한 왜곡과 과장, 인신공격, 근거 없는 의혹 제기 등의 ‘흑색선전’과 구분해야 한다.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인물의 됨됨이를 검증하려는 시도마저 네거티브로 깎아내리고 무조건 배제하려는 태도는 유권자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공격받는 후보로서도 꼭 불리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철저한 검증 과정에서 진솔하고 솔직한 대응과 소통 역량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도 따지고 보면 검증 실패에서 비롯된 결과다. 17대 대선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맞붙었던 2007년 7월 국민검증청문회에선 박 전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의 관계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아무리 네거티브 공세라 해도 이런 식의 것은 천벌 받을 일이 아닌가”라며 최 씨 일가와의 관계에 대한 비판을 원천 차단했다.

대선 후보에 대한 투명하고 엄밀한 검증에 반대할 유권자는 없다.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판단을 내리기엔 남은 한 달여도 충분치 않은 시간이다. 문 전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상대 진영에 쇄도한 지지자들의 ‘18원 후원금’과 ‘문자폭탄’을 두고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가 논란이 일자 뒤늦게 유감을 표명했다. 선거 흥행을 위해선 ‘감칠맛’ 나는 양념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최고의 맛은 무엇보다 신선한 재료에서 나온다. 신선한 재료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게 검증이다. 검증은 양념일 수 없고 양념이 돼서도 안 된다.
 
문병기 정치부 기자 weappon@donga.com
#5월 9일 대선#최순실#대통령 탄핵#18원 후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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