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기자의 필담]최중경 회장 “美中 양쪽에서 러브콜? 허망하다 못해 눈물이 나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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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 최중경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과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세계은행 상임이사를 지내며 경제외교를 맡았던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한국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므로
세계 모든 국가가 고객이다. 낮은 자세로 실리 외교를 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과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세계은행 상임이사를 지내며 경제외교를 맡았던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한국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므로 세계 모든 국가가 고객이다. 낮은 자세로 실리 외교를 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최틀러’가 돌아왔다.

 경제관료 시절 “일국의 환율을 투기꾼의 놀이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며 외환시장에 강하게 개입한 환율주권론자. 이 때문에 크게 손해 본 뉴욕 외환딜러들이 “히틀러 같다”며 무서워했던 최중경(60)이 이번엔 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을 겨냥했다. 2011년부터 3년 동안 미국 워싱턴의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서 방문 연구위원을 지내며 보고 듣고 읽고 고민한 내용을 묶은 책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를 통해서다. ‘한중관계에 올인해 한미관계를 망쳤다’는 게 요지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그가 같은 보수정권의 안보 정책 담당자들을 “강대국도 아니면서 겉멋 든 외교를 한다” “분노의 주먹을 날리고 싶다”며 난타했다.

 올해 6월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제치고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선출된 그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22회 행정고시 합격에 앞서 대학 재학 시절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임종룡, 경제위기 관리능력 있어”

 ―국정이 마비된 상태다.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경제다. 불안 요인이 많다. 미국은 금리를 인상한다고 하고, 유럽도 극우파들이 유럽연합(EU)을 깨려고 한다. 아베노믹스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동안 풀어놓은 돈 때문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터지면 일본도 굉장히 어려워진다. 중국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부실이 있더라도 부실을 덮을 만한 권력이 있고, 아직은 시멘트를 묻힐 곳(건설 수요)이 많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자원에 의존하는 신흥국이 타격을 입고 신흥국으로 수출하는 우리가 어려워진다. 가계부채 문제에 자산시장 부진까지 엮여 잘못 터지면 외환위기가 오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있나.

 “정치 혼란이 계속되고 부동산 값이 많이 떨어지면 위기 가능성이 높아진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경제부총리로 적임자인가.

 “그렇다. 가계부채 문제를 다뤘고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경제금융비서관과 기획재정부 환율담당 차관도 했다. 국내외 위험 요인을 볼 줄 알고 관료로서 트레이닝을 받아온 사람이라 리스크 관리 능력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리스크도 걱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기 이전에 미국 대통령이고 공화당 대통령이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자기 색깔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 보호무역은 민주당의 어젠다이므로, 대신 안티덤핑, 상계관세 등을 활용한 공정무역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에 4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하는데 이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면 미국이 지게 돼 있다. 그래서 중국은 신경도 안 쓴다.”

 ―트럼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할까.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있나.

 “재협상 요구 이전에 리뷰를 세게 할 것이다. 환율은 미국 BHC(베닛-해치-카퍼)법의 조건을 충족하지 않도록 환율시장 개입 수준을 조절하면 조작국 지정이 어렵다고 본다.”

 ―미국에선 미중 간 FTA를 체결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2030년에는 중국 중산층이 10억 명(전 세계 중산층의 18%)이 되므로 미국 기업에는 기회라는 얘기다.

 “가능성이 매우 낮다. 미국이 중국에 날개를 달아줄 이유가 없지 않을까.”

 ―트럼프의 안보정책은 어떤가.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미국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할 수 있다. 그건 밀어붙일 것이다. 미국의 안보정책은 민주당과 공화당 간에 차이가 없다. 트럼프가 왔다고 바뀌진 않는다.”

“전략적 모호성은 말도 안되는 얘기”


 ―경제전문가인데 안보정책을 비판하는 책을 썼다.

 “외교 문외한은 아니다. 국제금융국장으로 금융외교를 했다. 세계은행 상임이사를 지냈는데 거긴 외교의 각축장이다.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로 외교 일선에도 있어 봤다. 청와대에 있을 때 어떤 주제든 모든 수석이 다 같이 모여 토론했다. 외교의 기본은 돼 있는 상태에서 헤리티지에 간 것이다. 안보가 잘못되면 경제는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 제도와 동북아 안보 쪽만 들여다봤다.”

 ―옛날 얘기지만 현 대통령 평가에서 외교 부문 점수는 높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굉장히 중요한 최첨단 전략자산이어서 노출되면 적의 공격 대상이 된다. 이런 걸 만천하에 공개하는 안보가 높은 수준인가. ‘협상의 여지가 없는 군사보안 이슈(non-negotiable confidential military issue)’를 ‘협상 가능한 공개적 외교 이슈(negotiable open diplomatic issue)’로 만들어 버렸다.”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유지했다.


 “양국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고, 휴전 상태에 있으며, 미국에 전시작전통제권이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략적 모호성은 이론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게다가 중국은 북한과 조중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어 국제법상 적군이다. 약자가 전략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양쪽에서 뺨 맞는다.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에서 경고했다. ‘어중간한 중립은 파멸을 부른다’고.” 

 ―현 정부의 친중(親中)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는데….


 “지금 정부는 북한이 곧 붕괴되고, 그러면 중국의 승인 아래 남한 주도의 통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 때문에 다 꼬였다. 대미 외교를 희생하면서까지 중국에 기댔던 거다. 첫 조각(組閣) 때 노무현 정권의 인사를 국방, 외교장관으로 앉힌 걸 보고 미국은 기절초풍했다(노무현 정부 시절 김장수 국방부 장관과 윤병세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비서관을 뜻함). 미국엔 차관급을 대사(안호영)로 보내면서 중국엔 측근인 정치 거물(권영세)을 보냈다. 나중엔 국방부 장관, 대통령안보실장을 지내 군사기밀을 다 아는 사람을 주중대사(김장수)에 임명하고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가 정점을 찍었다. 대통령에게 중국의 승인 아래 통일하자는 식의 진언을 한 사람은 훗날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로서는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이 현실적인 대책 아닌가. 호주도 같은 전략을 쓰고 있다.

 “내놓고 할 게 있고 숨기면서 할 게 있다. 그걸 굳이 안미경중이라는 구호를 만들어 할 필요가 있나. 결국 양쪽에서 비난만 받고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에 시비를 걸고, 미국은 엔화의 평가절하는 눈감아주면서 유독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선 날을 세운다. 이래도 미중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건가. 허망하다 못해 눈물이 나온다.”

 ―우리가 중국에 다가가는 동안 미국과 일본이 가까워졌다.

 “아베노믹스는 경제 이슈가 아니다. 중국의 아시아 안보 위협에도 미국이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법) 때문에 국방예산을 깎아야 하자 대신 일본을 재무장시킨 거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니 엔화 평가 절하의 아베노믹스를 허용한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실패하면 일본 재무장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

 ―일본 재무장 이슈와 관련해 외교부와 국방부에 ‘분노의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다’고 책에 썼다.

 “위안부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일본 재무장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외교 테이블에 결석했다. 결국 미일 간에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한다는데 외교부와 국방부는 ‘우리의 동의 없이는 불가하다’는 말만 한다. ‘우리의 요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했어야지. 일본 재무장을 용인하는 대가로 우리도 무장을 강화해 달라고 했어야 한다.”

 ―왜 이런 실책이 나온다고 보나.


 “안보는 목표이고 이걸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싸울 거냐(국방) 말로 할 거냐(외교)다. 외교는 안보의 수단일 뿐이다. 외교부는 거기에 맞춰 처신해야 한다. 그리고 군사전문가와 안보전문가는 다르다. 미국 안보전문가는 군대 있을 때 대학원에서 안보를 연구한 뒤 중령이나 대령쯤에서 옷 벗고 나와 민간 싱크탱크나 대학으로 간다. 우린 별 네 개 단 싸움꾼이 안보전문가인 줄 안다. 그러니 사드가 군사 이슈인지 안보 이슈인지 외교 이슈인지 헷갈리는 거다. 군사적 긴장도가 가장 높은 한반도에서 안보 외교 군사가 구별이 안 되다니….”

“대통령은 국민에게 모든것 드러내야”

 ―경제 수준이 외교 안보보다 높다고 볼 수 있을까.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최순실 스캔들 배후에 재벌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문제의 본질은 함량 미달의 정치인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피해자라는 뜻인가.

 “정치를 악용한 세력들을 걸러내지 못한 정치의 문제라는 뜻이다. 경제민주화에는 찬성하지만 그게 안 돼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의 지시를 무비판적으로 수행한 관료들도 욕을 먹고 있다.


 “그런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두 가지 환경 요인이 생겼다. 하나는 국회선진화법, 둘째는 세종시다. 내가 공무원 할 때는 여당과 생각이 같으니 법안이 별 수정 없이 통과됐다. 지금은 여당에 가서 설명하고, 야당에 가서도 설명한다. 그래도 안 돼서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서 있다. 정부가 발의한 것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후배들을 만나 ‘그래도 너희들이 가장 우수한 집단이다’ 그러면 ‘일하면서도 신이 안 난다’고 답한다. 우리 땐 그런 말 들으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했는데….”

 ―경기고 동창인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 대해 퇴진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대통령에게 ‘그런 분야까지는 관심을 안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했어야 했는데, 아쉽고 참담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은 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최순실 게이트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신비로운 공간은 없어야 한다. 적당히 상징 조작하고 덮어주면 안 된다. 완전히 노출시켜야지. 적어도 공인(公人)이라면.”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임종룡#최중경#국가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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