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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로 가는 길, 짧고 굵게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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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로 가는 길, 짧고 굵게 일하자”

김현수 기자 , 이은택 기자 , 강승현 기자 , 김재희 기자 입력 2018-03-13 03:00수정 2018-03-1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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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행복원정대:워라밸을 찾아서]2부 일하는 방식이 확 달라진다
<1> 집중근무제가 바꾼 워킹맘 일상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자.”

한창 집중해 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선배 A가 말을 걸었다.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요즘은 다르다.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 시간에는 흡연실이 폐쇄된다. 회의에도 시간 제한이 생겼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해보라’는 어색함과 대책 없는 ‘대책 회의’에서 해방됐다.

일부는 “좋은 시절 다 갔다”며 여유가 사라졌다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 대리들은 바짝 일하고 빨리 가는 게 낫다. “야호!”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혁명’이 재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기업들은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늘어지는 회의를 없애고, 보고 단계를 줄여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군더더기 시간 다이어트’ 실험을 진행 중이다. 하루에 5시간 정도만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나머지 근무시간은 알아서 정하라는 ‘자율 근무제’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7월부터 최장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만큼 ‘일의 질’도 높여야 한다는 절박감이 변화를 이끌고 있다.

본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대·중소기업 336곳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봐도 상당수 기업이 워라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응답 기업의 44.6%가 ‘앞으로 워라밸 중심 조직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항목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16.7%에 불과했다. 응답 기업이 추진하는 워라밸 관련 제도로는 PC오프제 등 시간 단축(50.0%·이하 복수 응답), 회의 축소(48.2%), 회식 제한(43.4%), 보고체계 단축(37.3%) 등이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인 2020년까지 진행할 특별기획 ‘행복원정대 2020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올 한 해 ‘워라밸을 찾아서’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1부에서는 무너진 워라밸 현장을 소개했다면, 2부는 일하는 방식을 바꿔 본 기업들의 워라밸 실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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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 실험소

잃은건 ‘커피 한잔의 여유’… 얻은건 ‘아이의 환한 미소’

3개월 만에 아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침마다 눈물로 엄마를 붙잡던 세 살배기가 웃으며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퇴근 후 엄마를 봐도 ‘혼자 놀기’를 하던 아이가 어느새 ‘애교쟁이’가 됐다. 평소 입 밖에 내지 않던 ‘사랑해’란 말과 함께 스킨십이 잦아졌다. 포동포동 살도 올랐다. 워킹맘 차미경 이마트 품질관리팀 대리(32)는 “일하는 방식이 바뀐 후부터 일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눈에 띄게 달라진 아이의 모습에 놀란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은 올해 대기업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도를 도입했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 기본이다. 재계의 첫 파격 실험이다. 시행 후 두 달여가 지난 현재. 신세계의 ‘워라밸 실험’은 순항 중일까. 어떻게 퇴근 시간을 당겼을까. 의문을 풀기 위해 기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차 대리의 일상을 쫓았다.

5일 오전 8시 30분. 차 대리가 사내 어린이집에 3세 아이와 함께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차 대리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아이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자 웃으며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린이집 앞에서 우는 아이를 한참 달래야 했어요.”

오전 10시. 사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부터는 집중근무 시간입니다. 오후 5시 정시 퇴근을 위해 집중근무 시간에는 회의, 흡연, 티타임 등 업무에 방해되는 행동을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일반 ‘착한’ 사내방송과 달리 단호하고 조금은 강압적인 말투였다.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사무실 안팎은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다른 부서에서 걸려오는 업무 협조 전화도 줄었다. 간간이 스탠딩 회의를 했지만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다.

말없이 일하는 차 대리 곁을 떠나 6층 흡연실 앞으로 가봤다. “못 들어가요. 지금 잠겼어요”라며 청소 담당 아주머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카페도 한산했다. 복도에서 개인적인 통화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차 대리도 점심시간인 오전 11시 30분까지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계속되는 정적 탓에 지켜보던 기자가 졸음이 올 정도였다.

오전 11시 40분. 메뉴를 정하고 나갈 준비를 서두르는 일반적인 회사 풍경과 달리 차 대리는 동료들과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10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식당은 북적였다.

“점심 외출 시간을 줄여 일해야죠. 가끔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해요. 올해는 한 번도 밖에서 점심식사를 한 적이 없어요.”

차 대리의 말에 다른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에서 만난 한 대리급 직원이 말했다. “솔직히 진짜 집에 일찍 가게 될 줄 몰랐어요. 외부에 있는 맛집을 가도 상사와 함께라면 불편한데 그냥 빨리 먹고, 몰아서 일하고 집에 가는 게 좋아요.”

차 대리는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찾기는 어려웠다. 낮 12시 30분부터 오후 업무가 시작했다. 오후 2시에 또 단호한 ‘집중근무 알림방송’이 나왔다. 오전 방송 때보다 차 대리의 손이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두 번째 집중근무 방송이 나왔다는 건 업무마감까지 3시간 남았다는 소리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웹 서핑을 할 시간이 없었다. 차 대리뿐 아니라 다른 직원들의 키보드와 전화기도 오전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오후 5시. “시한폭탄이 떴다!” 차 대리가 말했다. 퇴근 시간 임박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모니터에 남은 시간 30분이 표시되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결승선을 앞둔 마라토너 같았다.

오후 5시 5분, 차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팀장이 아직 자리에 있었는데 그냥 나가도 되냐고 기자가 물었다. ‘퇴근할 때는 따로 인사를 안 해도 된다’고 팀장이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아침에 헤어진 모자(母子)가 다시 손을 잡은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아이는 엄마를 발견하자마자 와락 품에 안겼다. “엄마 오늘 어린이집에서 말이야….” 아이의 수다가 벌써 시작됐다. 손을 꼭 잡은 모자는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소리 내어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회사의 워라밸 실험이 되찾아준 건 모자의 ‘환한 미소’였다.

How To

하루 11시간 근무 김대리, 실제 일한건 5시간 32분뿐

‘김 대리’가 회사에서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몇 시간일까. 오전 9시 회사로 출근해 오후 7시 58분에 퇴근한다. 평균 근무시간은 10시간 58분이지만 점심시간 등을 빼고 생산적으로 보낸 시간은 5시간 32분이었다. 이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략 컨설팅펌 맥킨지가 2016년 9개 기업 대리 45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다. 보고서는 “야근을 할수록 생산시간은 줄어드는 야근의 역설이 만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무시간에 바짝 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것이 기업과 임직원 모두 ‘윈윈’인 셈이다. 올 초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이마트의 배광수 인사팀장은 “단축 근무 도입은 워라밸보다는 생산성 향상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 몰입도를 높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처럼 근로시간 단축에 나선 기업들은 근태 정보 파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전자도 근무시간 입력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개편했다. 기존에는 사원증을 게이트에 찍고 들어가거나 나온 시간만 기록됐다. 시스템 개편 후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하루와, 주당 근무시간이 자동으로 계산돼 분 단위까지 시스템에 나타난다. LG전자도 지난달 26일부터 사무직을 대상으로 주 40시간 근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개인이 자신의 스케줄을 관리하기 위해 출퇴근 및 비근로시간을 입력할 수 있도록 근태 정보 시스템을 개편했다.

■ 경영잡학사전 : 컴퓨터 자동으로 꺼지는 ‘PC오프제’

2009년 첫 시행… 퇴근시간 앞당기는데 한몫

“오후 7시 30분이 되면 PC가 꺼집니다.”

2009년 IBK기업은행이 신기한 제도를 도입했다. 퇴근 시간이 되면 업무용 PC가 꺼지는 ‘PC오프제’였다. 금융권 최초였다.

당시 은행권은 1997년 외환위기의 혹독한 구조조정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 적은 사람이 많은 업무량을 감당해야 했다. 2008년 기업은행은 오후 8시 퇴근 캠페인을 벌였다. 지금으로 보면 오후 8시도 야근이지만 이때만 해도 ‘칼퇴근’에 해당됐다. 캠페인만으로 부족하자 이 은행은 오후 7시 30분에 PC가 종료되는 강제적인 조치에 나섰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평균퇴근시간이 2008년 오후 9시 12분에서 2016년 오후 6시 42분으로 150분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해마다 PC 종료 시간은 앞당겨지고 있다. 기업은행은 2012년 오후 7시로 바꿨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14년부터 오후 6시에 PC가 꺼지고, 신세계그룹은 올해부터 오후 5시 30분에 꺼진다. PC오프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은 그대로인데 PC가 꺼져서 카페에서 몰래 야근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이 없을 때도 상사 눈치만 보고 앉아 있던 문화는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현수 kimhs@donga.com·이은택 기자·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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