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근처에서 딱 1잔만 하고 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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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딱 1잔만”

#2.
“제 사생활을 배려하지 않는 직장도 차버리고 싶어요!”

얼마 전 헤어진 남자친구 이야기를 묻는 상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았다.
입사한 지 5년. 그동안 한 연애는 2번.
결론은 같았다.

“그 회사엔 ‘회식 악당’들만 사냐?”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애인은 날 떠났다.

#3.
내 이름은 박지현(가명·29·여)

대학 졸업과 함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이 회사에 입사했다.
정년 보장, 정시 퇴근, 적당한 근무강도…

완벽한 워라밸 ‘3종 세트’

#4.
하지만 그땐 몰랐다.
3종 세트를 단박에 무력화할 엄청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바로 저녁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회식 폭격’이다.

#5.
“근처에서 딱 1잔만 하고 가자.”

입사 한 달째 야근보다 더 끔찍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퇴근 때마다 “누가 팀장 입 좀 막아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신입사원의 숙명이라며 억누른 불만을 1년 만에 터뜨렸다.

“팀장님. 바로 집에 가면 안될까요? 몸이 너무 힘들어서요.”

“일만 시키는 사람보다 낫잖아? 고맙지도 않나 보네.
이렇게 맛있는 거 잘 사주는 상사 봤어?”

#6.
(‘헤어진 연인들’ 웹툰)

회식이 끝나면 새벽 1시가 되기 일쑤였다.
한 달에 최소 6번, 연말연시엔 이런 상황이 무한 반복됐다.
심할 때는 주당 회식 시간만 20시간쯤 된 것 같다.

동료들은 회식 ‘빌런’(악당)에게 반격을 꾀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불참으로 시위했고 누군가는 당당히 ‘회식 구조조정’을 외쳤다.

#7.
그렇다고 위축되면 애초 빌런이 아니었을 터.

“비싼 돈 들여 맛있는 거 먹이고 술 사주며 업무 스트레스 풀어주는데 군소리가 많다”
“임원이 되고 싶어? 그럼 ‘술상무’부터 해야지!”
“회식은 조직생활의 기본이야. 이게 싫으면 나가서 닭이나 튀기든지”

그들의 ‘회식 예찬 어록’은 눈부시게 화려했다.

#8.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사진)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의 저자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를 ‘착취 회식’이라고 규정했다.

“직장 동료를 ‘식구’에 비유하는 한국에선 함께 밥을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회식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지만
일상에 피해를 주는 회식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9.
(회식 때문에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는가? 사진 )
그렇다면 적정한 수준의 회식은 어느 정도일까.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 조사 결과 ‘저녁식사 1차만’(45.7%)을 가장 선호했다.
‘저녁 뒤 노래방 등 화려한 2차’를 즐기고 싶다는 직장인은 0.5%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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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1.(목)
원본l 김수연 기자
사진 출처l 동아일보 DB·뉴시스·Pixabay
기획·제작l 유덕영 기자·김채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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