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화장 하고 복근 만들고… 얼짱-몸짱 집착하는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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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행복원정대/초등 고학년의 행복 찾는 길]<4> 어른들 뺨치는 ‘외모 스트레스’

“이 정도면 복근 있는 건가요? 5개월째 하루 10분씩 복근운동 하는데….”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초딩 복근’을 넣으면 앙상한 상반신을 드러낸 사진이 줄줄이 뜬다. “ㅋㅋ 딱 봐도 아닌데요” “어린 나이에 안 좋습니다” 등 댓글의 반응은 신통치 않지만 아이들은 끊임없이 복근에 대한 정보와 평가를 구한다.

여학생들은 “이 정도면 얼짱일까요? 얼평(얼굴 평가) 부탁해요”라며 ‘초딩얼짱’ 도전 카페에 사진을 올린다.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외모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나이대도 초등 고학년으로 낮아졌다. 서울의 초등 4∼6학년 남녀 학생과 그 어머니 128명을 대상으로 한 ‘2020행복원정대’ 심층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키 작다” “살쪘다”는 말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 외모를 바꾸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 선망의 대상 ‘초딩얼짱’ ‘초딩복근’


“한번은 냉장고의 냉동실 문을 열었더니 숟가락이 나오는 거예요. 딸아이가 눈이 부어서 안 예뻐 보인다고 얼린 숟가락으로 마사지하려고 그랬대요.”(6학년 딸을 둔 A 씨)

“아이 방문을 열었더니 흠칫 놀라요. 풀로 쌍꺼풀을 만들고 있었던 거죠. 싸구려 쌍꺼풀 액을 한동안 쓰고 있었던 거예요. 눈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야단을 쳤죠. 아이 아빠는 말려서 될 일이냐며 아예 비싼 화장품을 사주라고 하고요.”(6학년 딸의 엄마 B 씨)

10대 초등학생을 키우는 엄마들은 자녀들의 외모 스트레스 얘기가 나오자 에피소드를 한가득 꺼내놓았다. 딸이 6학년인 엄마 C 씨는 “요즘 배우들 중에 모델 출신이 많아서인지 몸매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5학년 딸을 둔 엄마 D 씨는 “통통한 편이라 스트레스가 많다. 음악 줄넘기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유튜브에는 초등학생들이 직접 찍어서 올린 ‘초등학생 화장법 강의’ 영상이 많다. 6학년 A 양도 유튜브에서 화장을 배웠다. 학교 갈 땐 미백 선크림과 붉은 입술보호제만 바른 ‘생얼’로 나가지만 친구들과 놀러 갈 땐 아이라인을 그린다. “친구들과 생일선물도 화장품을 주고받아요. 시험 끝나고 화장품 가게에 우르르 몰려가 시험용 화장품을 이것저것 발라보기도 하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훈녀생정(훈녀가 되는 생생 정보)’이라는 제목으로 정보를 공유한다. ‘비비크림을 자연스럽게 바르려면 로션을 섞어야 한다’ ‘립밤은 ○○제품이 제일 촉촉하다’ 등 어른들도 잘 모르는 메이크업 노하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누구나 아는 정보를 올리면 ‘뻔생(뻔한 생생정보)’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5학년 딸을 둔 엄마 E 씨는 “인터넷에서 온갖 패션과 화장법을 배우는 요즘 아이들은 멋 부리는 수준이 엄마들 대학 1학년 때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또래 남자 아이들의 최대 고민은 키다. 심층 인터뷰에 응한 5학년 A 군은 “운동을 잘해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데, 그래도 키가 컸으면 좋겠다”고 했다. 6학년 B 군은 키가 170cm 가까이 된다면서도 키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185cm는 돼야 할 것 같아요.”

좀 더 ‘진도’가 나간 아이들은 복근에 관심을 갖는다. 포털 사이트엔 ‘초딩 복근’에 대한 질의응답이 활발하다.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복근 만들려고요. 키 166cm에 몸무게 81kg입니다. 복근 만들면 키 안 크나요?” “힘주지 않아도 복근이 선명하게 나오려면? 힘들어도 괜찮으니 꼭 가르쳐주세요.”

○ 엄마들도 “뚱뚱하면 왕따 된다”

초등 고학년들이 외모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것은 뇌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춘기 초입인 10대 초반엔 시각 피질이 자리 잡은 ‘새발톱고랑’이 발달한다. 시각을 담당하는 대뇌 영역이 자라다 보니 ‘남은 어떻게 생겼고, 나는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급격한 신체적 변화를 겪는 시기라 다른 사람을 관찰하면서 자기 몸을 인식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관심을 갖게 된다.

외모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아이들을 치료해온 김효숙 서울중앙미술치료연구소 원장은 “어릴 땐 서로 뒤엉켜 놀던 아이들이 10대에 접어들면 남녀를 구분하게 된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이성에게 인기 없는 외모’로 비치는 것을 고민거리로 여기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외모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떨어져 스트레스 요인이 될 경우에 발생한다. 이 또래의 외모 만족도와 스트레스의 관계를 다룬 연구들은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초등학교 5, 6학년 학생 391명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는 외모 만족도가 낮은 학생이 더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부모와 교사, 친구가 자신을 인정하고 좋아한다고 여기는 아이들은 외모 만족도가 낮아도 우울감을 덜 느꼈다(배은진의 2015년 한양대 석사논문, ‘초등학교 고학년의 외모만족도와 우울의 관계’).

하지만 심층 인터뷰에 응한 엄마들은 아이의 외모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지 않은가 걱정하면서도 아이에게 “살 빼라”는 압력을 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나쁘게 보일까 봐’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남의 시선에 맞춰 살도록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다.

6학년 B 양은 “엄마가 어려서부터 아나운서가 되라고 세뇌교육을 시키셨다. 예쁘고 공부 잘하면 취직도 잘되고 시집도 잘 간다고…”라고 전했다. 5학년 C 군은 “엄마가 ‘넌 키도 작은데 뚱뚱하면 왕따 된다’며 못 먹게 하신다. 여동생도 엄마를 따라서 ‘오빠, 살찌니까 그만 먹어’ 그런다. 그럴 때 화가 난다”고 했다. C 군의 엄마 F 씨는 “내 눈엔 귀엽지만 주위에서 아이가 뚱뚱하다고들 하니까 염려가 돼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근아 연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아이들은 자기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외모에 집착하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며 “내가 어떤 모습이든 부모가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외모가 아닌 영역에서도 자기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취미를 개발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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