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핏대 올리는 버럭상사… 가슴 철렁, 뒷목은 뻐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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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공감백서 맞아, 맞아!]리더 분노 폭발이 두려운 부하직원

상사의 분노가 두려운 직원들

‘내 귀엔 아무것도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안 들린다….’

제조업체에 다니는 30대 초반 이명재(가명) 씨는 직속 상사인 같은 팀 과장이 수화기를 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런 주문을 왼다. 평소 과장이 다른 팀 직원이나 상사와 업무 관련 통화를 하고 난 뒤엔 쌍욕으로 혼잣말을 하며 화를 내기 때문이다.

이 씨는 “조용하고 묵묵히 일하는 스타일인데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전화를 받으면 돌변한다”며 “하루에 한 번씩 ‘버럭’할 때마다 내 가슴이 철렁하고 뒷목이 뻐근해진다”고 말했다.

화를 억누르지 못하는 ‘버럭 상사’들 때문에 괴로운 직장인이 많다. 리더들의 분노 표출은 조직문화를 경직시키고 창의력을 억제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타고 ‘버럭 리더’에 대한 소문이 외부로 퍼져 기업 이미지를 손상시키기도 한다.

○ ‘버럭 상사’, 40대 남성이 많아

‘버럭 상사’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직장인 회원 628명을 대상으로 e메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장에 버럭하는 상사·동료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82%가 ‘있다’고 답했다. ‘답변자 본인도 화를 참지 못하고 분출한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40.6%가 ‘그렇다’고 털어놨다. 또 ‘버럭 상사’의 연령대는 40대가 38.6%로 가장 많았고 이어 30대(32.0%) 50대(22.1%) 20대(4.9%) 60대(2.3%) 순이었다. 성별로는 남성(77.3%)이 여성(22.7%)의 3배 이상이었다.

이들은 왜 화를 쏟아내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비공식적인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30대 워킹맘 정모 씨는 최근 자신에게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얼마 전 타 부서의 직원에게 업무를 재촉하는 전화를 걸었다가 핀잔만 듣자 분을 이기지 못한 채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휴지통을 걷어찬 뒤 사무실을 뛰쳐나왔기 때문이었다.

정 씨는 “애를 낳고 복직해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데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애를 봐주는 시어머니의 잔소리 때문에 폭발 직전이었다”며 “돌이켜보니 어디서든 고민을 털어놓을 기회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일터와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비공식적인 대화가 절실했다는 얘기다.

버럭대는 사람들은 이렇게 개인 사정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족한 리더십이나 품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도 적지 않다. 최철규 HSG휴먼솔루션그룹 대표는 “불같이 화내는 리더들은 자신만 옳다고 믿는 ‘옳음 중독’이나, 자신이 직급이 높고 나이가 많으니 우월하다고 여기는 ‘갓(god) 콤플렉스’에 걸린 경우가 많다”며 “후배 직원을 평가하거나 판단하려 들지 말고 업무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도록 말하는 화법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 조직 병들게 하는 ‘버럭 리더십’

리더들의 과도한 분노 표출은 조직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제조업체에 다니는 30대 김모 씨(여)는 걸핏하면 화를 내는 임원 밑에서 일한 뒤부터 자주 한의원을 찾는다. 김 씨는 “임원이 화낼까봐 전전긍긍하다 소화가 안 되고 뒷목이 뻣뻣하다며 한의원에 가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다”고 전했다.

조직의 역량이나 소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인크루트 조사에서 ‘버럭 상사·동료와 대화해야 할 불가피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질문에 ‘되도록 짧게 대답한다’가 38.4%로 가장 많았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상사와의 회의에서는 논의가 짧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리더의 비합리적 처신이 ‘땅콩 회항’ 사건처럼 SNS를 타고 퍼져 기업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각 기업 직원들이 익명으로 사내의 ‘뒷담화’를 공유하는 ‘블라인드 앱’, ‘대나무숲 앱’ 등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들이 이미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문제가 심각한 리더의 소문은 회사 밖에까지 널리 퍼지고, 결국 이런 처신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리더와 기업 인사시스템이 함께 변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리더는 직원을 수평적인 ‘파트너’로 여기며 일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며 “기업들은 임원을 선발할 때 실적과 함께 인성 및 리더십도 비중 있게 평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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