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가을볕처럼 짧은 힐링, 가시 박힌 아이들은 지옥으로 돌아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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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엔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지∼.” 아영이(9·여)는 그룹 다섯손가락의 ‘풍선’ 노래를 제일 좋아했다. 동요시간에 이 곡이 나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어서서 따라 불렀다. 아영이의 ‘예쁜 꿈’은 위태로웠다. 》  
캠프 마지막 날 밤, 아이들은 촛불을 가운데 두고 모여 앉았다. 그동안 감춰뒀던 상처들과 얼어붙어 있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아이들은 훌쩍거렸다. “우리 이 기억들을 어른이 될 때까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의정부=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캠프 마지막 날 밤, 아이들은 촛불을 가운데 두고 모여 앉았다. 그동안 감춰뒀던 상처들과 얼어붙어 있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아이들은 훌쩍거렸다. “우리 이 기억들을 어른이 될 때까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의정부=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허벅지를 따라 ‘ㄴ ㅈㄹㅅㅈㅇ ㄱㄹ’이라는 초성이 조그맣게 적혀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야”라고 묻자 “몰라요”라며 달아났다. 저녁 무렵 아영이는 기자 옆으로 다가와 바지를 끌어올려 보였다. “선생님, 이거 ‘나 장례식장에 갈래’라고 쓴 거예요.” “장례식장이 뭔데?” “죽으면 가는 곳이잖아요, 저는 죽고 싶어요.” 삐뚤빼뚤한 글씨는 볼펜으로 여러 번 눌러 쓴 듯 파여 있었다.

○ ‘때리지 말기’


아영이는 2012년 겨울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신고가 들어온 아이였다. 술을 달고 살던 아버지는 아영이가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곧잘 주먹을 휘둘렀다. 아영이 동생을 임신한 상태로 매를 맞던 엄마는 아직 어린 딸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아영이는 6세 때부터 혼자 집 앞 공공도서관에 숨어 있거나 길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캠프 첫날, 수련원에 도착한 아이들은 가방을 꼭 끌어안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아주며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어도 웃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시작됐지만 준우(10)는 수련원 강당에 앉기를 거부했다. 친구들 사이에도 끼지 못하고 혼자 강당 창틀에 앉아 있었다. 선생님이 설득하며 손을 잡자 괴성을 지르며 팔뚝을 물어뜯었다. 준우가 발길질로 강당 문을 차며 이끌려 나가는 동안 아이들은 조용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참가아동명단’의 ‘준우’란에는 ‘낯선 사람이 자신의 몸을 함부로 만지는 것을 싫어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준우는 어머니가 자신을 때린 상처를 피부로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또래보다 고통에 민감했다. 술래잡기를 하다가 넘어져 조금만 피가 나도 온 몸이 얼어붙었다. 선생님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싶으면 ‘아프다’는 호소를 많이 했다. “너는 눈이 참 예쁘구나”라고 칭찬해 주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눈을 비빈 뒤 “여기가 아파요”라며 다가왔다. 첫날 오후, 모둠 규칙을 정하는 시간에 아이들이 써내려간 목록은 ‘1.욕하지 말기 2.무시하지 말기(외로우니까) 3.때리지 말기(다치기 때문입니다)’였다.

저녁 무렵이면 아이들은 하나둘 무너져 내렸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가 싶다가도 오후 7시 전후가 되면 여기저기서 ‘불안 신호’가 터졌다. 친구들과 곧잘 어울리던 민혜(11·여)가 갑자기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계속해서 옆에 앉아 ‘함께하자’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잠자리에 누워서야 다시 입을 연 민혜는 “선생님은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어요?”라고 물었다. 민혜는 네 살 때부터 단란주점에 다니는 어머니가 일을 나가면 혼자 밤을 보내야 했다. 좀더 커서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왕복 한 시간 거리를 혼자 달렸다. 술에 취해 담배를 피우고 딸을 때리는 어머니였지만 민혜는 혼자 남는 게 더 싫었다. 대부분의 아이에게 ‘저녁’은 부모님이 자신을 방치하고 나가거나 돌아와서 폭력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첫날 밤, 하루 종일 친구들을 때리고 괴롭히던 준우는 결국 친구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선생님 방에서 잤다. 잠들기 전 준우는 선생님과 1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던 끝에 “하나만 대답해 주세요”라고 입을 열었다. “저 이렇게 할 줄 알면서, ○○이도 있고 △△도 있는데, 저는 나쁜 아인데 왜 데리고 왔어요?”라고 물었다. 선생님은 “너희들 중에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아이는 한 명도 없어. 준우도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데려온 거야”라고 대답했다. 준우는 한참 있다가 “애들이 절 때려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아니야, 애들이 널 때리면 선생님이 지켜줄 거야”라는 선생님의 말에 준우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 구겨진 마음 펴기

“야, 시끄러워!” “너 죽을래?”

A 선생님이 소리를 치자 B 선생님이 들고 있던 하트 모양의 종이가 조금씩 구겨졌다. B 선생님은 다시 C 선생님에게 화를 냈고, 그러자 C 선생님의 ‘마음’이 구겨졌다. 잠시 후 선생님들은 반대 순서로 차례차례 “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속상했죠”라며 사과했다. 구겨진 마음은 손안에서 조금씩 다시 펴지며 원래 모양을 되찾았다.

둘째 날 저녁, 수련원에 들어온 지 처음으로 모든 아이가 조용히 무대를 지켜봤다. 대부분의 아이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 등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었고 좀처럼 프로그램에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연극만큼은 모두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앉아 식사하기, 골고루 먹기, 아침에 일어나서 인사하기. 9∼12세 초등학교 고학년에겐 기본적인 발달 단계지만 아이들에겐 모든 게 낯설어 보였다. 식은 밥과 집에 쌓인 김으로 혼자 밥 먹는 데 익숙했던 9세 아이는 다른 반찬을 전혀 먹지 않았다. 계란찜도, 카레도 입에 대지 않고 오직 김이나 김가루에만 밥을 뭉쳐 먹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선생님이 다정하게 안아 주고 ‘쭉쭉이(팔다리 스트레칭)’를 해주는 것도 신기해했다. “우리 엄마는 한 번도 이런 거 해준 적 없는데… 그래서 제가 키가 작은 거예요?”라며 아영이는 킥킥거렸다.

캠프에서 아이들은 친구들의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너 주고, 함께 연극 대본을 짜고 시를 짓는 과정을 각자 선택해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여느 캠프나 체험활동처럼 시간제한이나 경쟁 같은 것은 없었다. 팀을 이탈하는 아이가 속출했다. 단순히 ‘공 주고받기’를 성공하기 위해 4시간 동안 공 던지기만 하는 팀도 있었지만 선생님들은 화를 내지 않았고 끝까지 기다려 주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바로 안아 주고 볼을 쓰다듬어 줄 것’ ‘식사는 함께 인사한 뒤 시작하고 끝낼 것’ ‘친구를 때릴 경우 선생님과 대면한 자리에서 눈을 보고 잘못을 설명할 것’ 같은 규칙들이 선생님에게 주어졌다.

캠프 3일째, 아이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항상 먼저 밥을 먹고 일어서 버리던 아영이는 다같이 “잘 먹겠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숟가락을 들었다. 겉돌던 준우는 그룹에 들어가 남자아이들과 조금씩 어울리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동요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얼굴과 몸 여기저기에 그날 치 반창고를 붙인 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저는 집에 엄마도 없고 언니도 멀리 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친해지고 싶었어요. 그럼 내가 잘해줄 수 있는데… 너무 잘 못해줘서 미안해요. 우리 이 기억들을 어른이 될 때까지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캠프 마지막 밤, 촛불을 든 수진이(11·여)가 울먹였다. 수진이는 첫날부터 씩씩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다투는 동생들을 말리고 우는 아이를 토닥였다. 숙소에서 혼자 공기놀이를 하다 선생님이 끼어들자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 수진이의 아버지는 신체적 장애를 가졌고 어머니는 망상과 환청에 시달렸다. 2011년 위생과 의료 상태가 엉망인 채 방임 학대로 기관에 신고된 아이였다. 외롭고 아팠던 기억은 아이들을 빨리 자라게 했다. 수진이는 ‘자신의 꿈’을 그리는 시간에 씩씩한 여경을 그렸다. “저 그동안 놀리고 괴롭혔던 아이들, 그런 나쁜 사람들을 혼내 주고 싶어요.”

○ 남겨진 이야기

기자가 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주말 아침,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집으로 돌아간 아영이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린 채 선생님이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을 꼭 쥔 채 울고 있었다. 방 옆에서는 부모가 “시끄럽다”며 악쓰는 소리가 들렸다. 아영이는 보호기관 상담 기간이 종료된 후 집으로 돌아가 사후 관리 중인 아이였다. 캠프 마지막 날 밤, 아이들은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돼요?” “돌아가서 아빠가 또 때리면 어떻게 해요”라고 몇 번이고 물었다.

학대 그 후, 아이들을 무사히 지켜줄 곳은 턱없이 부족하다. 9월 29일부터 지난해 ‘칠곡 계모 사건’ 이후 신설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 특례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동시에 시행됐지만 별도 예산이나 인프라 확충은 전무한 실정이다.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아동보호단체는 수용시설 유지와 최소한의 상담원 확보를 위해 외로운 예산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개정 아동복지법은 전국 244개 시군구에 아동보호전문기관 1곳을 두라고 규정하지만 실제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52곳에 불과하다.

기자는 강원 전남 부산 대구 등 전국 각지의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선발된 9∼12세 학대 피해 아동 41명과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3박 4일간 경기 의정부시의 한 수련원에서 치유 캠프에 들어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주최한 이번 ‘아자(아름다운 마음, 자랑스러운 나)’ 캠프는 △41명 아이들의 심리 지원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적용될 프로그램 매뉴얼 제작이 목표였다. 기자는 ‘선생님’ 중 한 명으로 아이들과 72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아동 학대 그 후’를 기록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의정부=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아동학대#힐링#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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