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統一로 가는 ‘마음通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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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남북, 마음의 장벽을 넘다]

南주민이 편견없이 다가가니… 탈북민도 오해풀고 손내밀어
南주민이 편견없이 다가가니… 탈북민도 오해풀고 손내밀어
“전 새터민(북한 출신 주민)이 많이 사는 아파트에 살아요. 새터민 구분 없이 살아왔어요. 어느 새터민은 저희 집에서 식사도 하고 놀고 가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조심해야 한다’며 뜸해진 거예요. 인사도 깍듯이 잘하던 그 집 아이들은 침을 뱉으며 욕을 하고 지나갔어요. ‘나는 스스럼이 없는데 왜 저렇게 바뀌었지?’ 많이 의아했어요.” 시원하게 웃는 게 좋아 별명을 ‘하하’로 지었다는 주경옥 씨(49·여)가 경쾌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막 끝낸 직후였다.

여장부 스타일의 북한 출신 백춘숙 씨(48·여)가 걸걸한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교회 나가세요? 저희 사람(북한 출신 주민)과 친하게 지내다 춤(침) 받은 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사람들 돕는 이들이 교회로 자꾸 유도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아 전화(연락)를 다 두절해버려요. (남한 주민들이) 잘해주다가 무시한다는 생각에 적응도 못하고요.”

“저는 그저 이웃으로…. 그렇게 생각하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주 씨)

“그러셨겠죠.”(백 씨)

백 씨는 웃었지만 불편한 표정이었다. 주 씨도 마찬가지였다. ‘오해가 더 커지면 걷잡을 수 없겠다.’ 대화를 이끌던 채정민 서울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가 다음 참가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8일 오후 경기 연천군 한반도통일미래센터. 남북 간 마음의 장벽을 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마련한 남북 주민 생애 나눔 프로젝트 ‘하나 되는 남북 주민, 만나면 통해요’가 진행된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동아일보는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한반도 통일의 첫 과제를 ‘통일의 미래상을 보여줄 북한 출신과 남한 출신 주민의 통합’이라고 봤다. 그래서 독일이 통일 이후 동서독 주민의 심리적 장벽과 선입견을 허문 생애 나눔 프로젝트에 주목했다.  
▼ “너무 달라” 서먹했던 남북, 작은 통일의 손뼉 맞추다 ▼

남북 생애나눔 프로젝트

한국판 첫 생애 나눔 프로젝트에는 20∼60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 10명(남북 각 5명)이 참가했다. 이질성을 이해하고 다가서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1박 2일의 문화·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동아일보와 남북하나재단이 공동 기획하고 통일부가 후원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전에 “남북 통합을 위해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반기면서도 “남북 주민들이 기대만큼 마음을 열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그 우려가 첫 단계인 자기소개 시간부터 현실화됐다. 분단 70년은 한국에 같이 사는 남북 출신 주민들의 마음을 이토록 갈라놓았다. 과연 이들은 마음의 장벽을 넘어 서로 통(通)할 수 있을까.

○ “아, 우린 아직 다르다.”

8일 밤. 참가자들이 지난 삶을 공유하는 ‘생애곡선 나누기, 상대 마음 이해하기’ 시간. 주 씨가 말문을 열었다.

“이웃의 한 새터민 부부를 집에 초대했더니 부부가 정장을 차려입고 왔어요. 편하게 생각한 건데. 초대에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는 거예요. 그 집 아이가 학교 적응을 어려워했어요. 편한 마음으로 그 어머니에게 미술치료를 권했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칼에 거절하기에 서운했죠. 나중에 슬픈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이를 임신한 채 강제 북송을 당한 경험이 있었던 거예요. 부부에게 너무 절박한 아들 얘기를 다른 학부모에게 하듯 너무 쉽게 말했구나….”

얘기를 듣던 북한 출신 정광성 씨(26)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 우리는 아직도 다르구나. 남북 8000만 국민이라면 얼마나 더 다를까. 같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겠다….’

정 씨의 차례. 자신의 의지보다는 부모를 따라온 한국행. 심한 사투리로 학교에서 ‘왕따’가 됐다. ‘북에 좋은 친구들을 두고 여기서 수모를 당해야 하나.’ 부모님에게 상처 주고 싶어 목숨을 버릴 생각을 했지만 담임교사의 도움으로 절망에서 벗어났다. ‘북한은 수치가 아니다. 한반도를 위해 일하자.’

황해도가 고향인 운송 씨(20)는 가난에 시달리던 아홉 살 때 벼랑에 올라 죽음을 생각했다. 악몽 같은 어린 시절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열심히 살아 가족을 지키고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주 씨는 깨달았다.

“젊은이들이 고생을 통해 우뚝 설 수 있구나. 무기력한 사춘기 아들과 만나게 해주고 싶을 정도로 와 닿는다. 그간 새터민 이웃들의 삶을 묻는 데 주저했다. 그들을 잘 알 수 없었던 이유다. 허심탄회하게 대화했으면 더 가까워졌을 텐데…. 아픔을 어루만지면 이해의 폭도 커질 수 있었다. 편견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부끄럽다.”

○ 남이 북에게 건넨 편지

어느덧 자정이 됐다. 참가자들끼리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는 시간이다. 내용은 다음 날(9일) 오전에 볼 수 있다. 주 씨는 백 씨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백 씨와 북한 출신 한명옥 씨(49·여), 남한 출신 한상옥 씨(61·여)와 같은 방을 썼다. 백 씨가 같이 자자고 권해 한 방에 누웠다. 오전 3시까지 도란도란 일상에 관한 얘기를 나눴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은 묻어뒀다. 백 씨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홀몸노인을 돕는 얘기를 들려줬다. 주 씨가 어떤 편지를 썼는지 백 씨는 몰랐다.

9일 아침. 채정민 교수가 참가자들에게 남북 출신 주민 간 마음의 벽을 들려달라고 했다. 백 씨 얘기다.

“같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어르신이 면전에서 욕해요. ‘나는 70년 살아 겨우 입주했는데 너희는 한국에 오자마자 아파트에 온다. 우리 세금 받아 뭐 하는 거냐’고.”

주 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새벽에 이야기꽃을 피웠을 때 ‘세금’ 얘기를 살짝 꺼낸 게 마음에 걸렸다. “저도 어떤 점에선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할머니께 어떻게 말해주셨어요?”

“(나라가 멀쩡해) 고향에 살았으면 임대아파트에 살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도 대한민국 사람이고 세금을 내고 산단 말이에요. 지나가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건 아니죠(잘못됐죠).”

○ 편견의 장벽을 넘다

백 씨는 주 씨의 편지를 읽었다. “(자기소개 때 백 씨의 얘기에) 살짝 화가 났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진 선입견을 알게 됐다는 마음을 전했다. 9일 낮 프로젝트를 마칠 때 주 씨는 백 씨에게 다시 편지를 보냈다. “바꾸는 게 쉽진 않지만 선입견과 오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자가 주 씨를 따로 만났다. “(백 씨) 말을 들었을 때 밑도 끝도 없이 저를 편견 있는 이로 몬다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하지만) 그분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이 선입견일 수 있음을 되돌아봤어요. 마음의 변화가 있었죠.”

백 씨는 프로젝트가 끝나기 직전 가장 마음에 남는 편지로 주 씨의 편지를 꼽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죠. 우리를 잘못 이해하는구나. 하지만 편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도 ‘남한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편견을 잘 바꾸지 않는다는 생각’이 편견임을 깨달았어요.”

○ 먼저 온 통일

프로젝트가 끝난 다음 날인 10일 뜻밖의 휴대전화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 씨가 보낸 것이었다.

“(전엔) 통일이라는 거창한 주제는 아무래도 저와 멀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통일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입견을 줄이는 방법은 먼저 (선입견을) 줄인 사람의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인 입소문을 만드는 거죠. 제 주변 가족부터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행사에 연결해준 북한 출신 친구 가족과 주말에 함께 경치 좋은 곳에서 캠핑하는데 이 이야기가 주제가 될 듯합니다. 약간 흥분되네요.”

주 씨의 메시지는 하나의 명제를 확인시켜준다. ‘통일(統一)하기 전에 먼저 소통하는 통일(通一)이 중요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남북#프로젝트#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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