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기자의 우아한] 옌쉐퉁 “북한의 진짜 목적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31일 1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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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표 국제정치학자 옌쉐퉁을 통해 깊게 읽는 한반도

옌쉐퉁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
옌쉐퉁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
중국을 대표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옌쉐퉁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동아일보 24일자 A23면에 소개된 단독 인터뷰에서 “북한은 (단기간 안에)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안에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21일 오전 칭화대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비핵화가 실현된다면 한반도 정세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면서도 “10년 이내에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2019년에 비핵화 협상에 합의에 도달할지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으로서는 몹시 비관적인 전망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인정받는 국제정치학자로 손꼽히는 옌 원장의 이런 예측은 어디서 나왔을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0일 내년 답방을 예고하는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보냈다. 24일자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옌 원장의 인터뷰를 통해 2019년 한반도를 예측한다.

북핵 문제 향방에 대한 옌 원장의 예상은 자신이 제시한 ‘미중 양극화 구조’에 근거한 것이다.
옌 원장은 세계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슈퍼강대국의 ‘양극화 시대’에 진입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불안한 평화의 시대’에 미국은 과거처럼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개입하는 ‘경찰국가’를 자처하지 않을 것이다. 북핵 문제에서도 미국은 ‘현상 유지’를 추구할 것이라는 게 옌 원장의 생각이다.

“미국은 현상 유지를 원합니다. 그래서 (북한) 비핵화를 위해 어떤 대가도 지불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역사에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외교 성과를 얻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 미국이 리더 역할 포기할 미중 양극화 시대

옌 원장은 지난달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2019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양극화 시대는 미중 슈퍼 강대국 간의 시대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평화의 시대다. 이 시대에 미중은 군비(軍備) 강화에 박차를 가하지만 두 개의 커다란 동맹 진영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양극화 시대에 중국이 거대한 동맹을 만들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도 거대한 동맹을 유지할 생각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동맹을 유지하는 비용이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이 동맹을 약화하는 것은 세계 리더의 역할을 더는 맡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무임승차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적은 물론 심지어 동맹에 대해서도 강경한 책략을 취할 것입니다.”

옌 원장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이 때문에 양극화 시대의 국제 질서는 20세기 냉전 때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미중 양극화 시대에 세계 국가들은 어떻게 되는가.

“모든 국가가 미중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특정 진영에 속했던) 미소 냉전과 다르게 국가들은 A 문제에서 중국을 지지하면서 B 문제에서는 미국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보편화될 것이다. 나는 이를 ‘문제(이슈)성 선택 전략’이라고 부른다. 무역에서 중국, 투자나 금융에서는 미국처럼 선택의 구분이 매우 세밀해질 것이다. 안보에서도 해양 문제는 이쪽, 육지 문제는 저쪽 등 여러 국가의 문제성 선택 전략이 갈수록 세분화될 것이다.”

―한국은?

“한국은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존해왔다. 앞으로 이런 선택 전략이 더욱 정교해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 안보는 미국에, 비전통 안보는 중국에 의존한다든지, 경제에서 기술은 미국에, 무역은 중국을 선택한다든지. 나는 미중 양극화 구조에서 이 전략보다 더 나은 책략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유일한 선택이고 유일한 가장 좋은 선택이다.”

옌 원장은 “미중 양극화 시대에 국가들은 이 ‘균형 책략’을 더 정교하게 할 수 있을 뿐 양극화의 큰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 미국이 대가 감수하지 않을 걸 김정은은 안다

옌 원장은 미중 양극화 시대에 미국이 중국과 전략 경쟁을 강화하면서도 자국 국익을 우선시해 세계 분쟁 문제에 덜 개입할 것이라는 점, 국가들은 이슈마다 미국 편에 설지 중국 편에 설지 선택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두 가지 전제에서 북핵 문제를 바라본다.

미중 간에 선택을 강요당하면서 균형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건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북아의 미중 대결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까?

“남북 모두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것이다. 남북의 프레임은 다르다. 한국은 미국에 더 가깝고, 북한은 중국에 더 가깝다. 앞으로 남북 모두 (미중 사이에서) ‘균형 책략’을 유할 것이다. 균형의 방식은 다를 것이다.

―당신은 미국이 동북아 지역 협력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서 중국이 동북아 지역 협력 리더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태도가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줄까?

“미국의 정책은 매우 명확하다. 한국 국민들은 미국에 너무 많은 희망을 품고 있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모든 대가를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가장 고려하는 것은 자국의 이익이지 한국의 이익이 아니다.”

옌 원장은 “미국은 북한과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할 생각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북한이 미국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핵 포기 이후 미국이 표변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걸 알죠.”

그는 “미국은 현상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고 단언했다.

“미국은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재의 대북 제재를 유지하고 북미 관계는 현상 유지를 할 것입니다. 북미 간의 이런 관계가 상당이 오랜 시간 갈 거예요. (북미 관계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을 겁니다.”

옌 원장은 북한 역시 “현상 유지를 원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현재의 북미 교착을 돌파할 필요가 없어요. 현상 유지를 하면 그만이죠. 이미 국력을 핵개발에서 경제건설을 돌렸으니 미국과 관계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룰 필요가 없습니다. 김정은은 미국과 더 많은 관계 개선을 기대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북한은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무기 기술이 이미 핵 위협의 최저 요구를 만족시켰다”는 이유다.

“미국의 묵인에 따라 북한은 미사일(개발)은 할 것입니다. (미국을 위협하는) 장거리미사일은 안 할 거예요. 단거리미사일의 정밀도과 관통 능력만 증가시킬 겁니다. 북한이 이런 현상 유지만 한다면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에 전쟁을 위협하지만 않으면 김정은은 만족할 겁니다.”

● 김정은이 국제봉쇄를 뚫을 돌파구는 한중이다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통신
옌 원장은 국가정책 노선을 핵개발에서 경제건설로 바꾼 북한 대외정책의 중점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을 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는 현상 유지면 됩니다. 북한이 하려는 관계개선은 한국 및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에요. 한국과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와 관계개선은 북한 경제건설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김정은이 국제 봉쇄를 뚫을 돌파구는 한국과 중국이다. 한국과 중국은 북한의 이웃국가일 뿐 아니라 더욱이 경제 파워가 있는 이웃국가다.”

―북한의 근본 목적은 미국과 관계 개선이 아닌가?

“개선할 수 없다. 미국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럼 왜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시도하나?

“미국과 대화는 소용이 없다. 미국이 북한을 (제대로) 상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이 한국 및 중국과 더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인가?

“그렇다. 북한은 미국이 자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북 제재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이 북한에 경제 원조 협력을 제공할 수 있나?
“한국과 중국 정부의 결정에 달렸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한국에 도움이 되는지 한국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한국 국내에 (이에 대한) 이견이 있다. 어떤 이는 이념적 문제 때문에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면 안 된다고 여긴다. 한국의 이익 면에서 볼 때 관계 개선은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북한 카드를 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바로 중국에 북한 카드를 썼다. 더욱이 그는 이 카드로 많은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이 카드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 트럼프는 이미 이 카드의 힘을 기본적으로 다 썼다. 앞으로 5년 안에는 이 카드가 중국이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북중관계가 이미 변했다. 김정은은 중국과 다시 대립하지 않는다. 미국이 이 카드를 쓰는 건 어렵게 됐다.”

한국이 북한과 관계 개선할 때는 미국 눈치를 봐야 한다는 질문에 옌 원장은 “미중 양극화 구조”를 다시 제기했다.

“미중 양극화 구조에서는 미중 실력이 차이가 줄어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큰 추세는 한국이 미국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서 북한과 관계를 개선할 것으로 봅니다. 한국은 북한과 관계 개선이 이점이 있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미국이 기분 나쁠 것을 두려워합니다. 미국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는 관계 개선을 못하죠. (어떻게 잘할지는) 외교상의 기술이자 균형의 문제입니다. (남북관계 개선의) 정책 결정이 미국이 너무 기분 나쁘게 하면 당연히 못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미국을 기쁘게 하려면 아무것도 못하죠.”

● 김정은은 왜 친서를 보냈나

김정은은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격적으로 친서(親書)를 보냈다. 청와대는 “친서에서 앞으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북미 협상이 여전히 교착 국면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김정은이 다시 문 대통령에게 손짓을 보낸 것이다.

“북한이 하려는 관계개선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을 향할 것”이라는 옌 원장의 시각은 2019년 김정은의 진짜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곱씹어 보게 한다.

김정은은 그간의 핵개발이 최소한의 핵무기 능력을 갖췄다고 판단했다. 핵개발에 집중했던 국력을 경제건설로 돌려 경제 발전을 꾀하기로 했다. 미국과 관계 개선이 필요하지만 선(先)핵 포기를 요구하며 그 대가로 체제 안정을 제시하는 미국과의 담판은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열의가 줄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이 본토를 향하지 않는 한 북핵 해결을 위해 국력을 크게 소모할 생각이 없다. 북한의 경제건설에 자본과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다.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경제건설에 필요한 자본과 인프라를 얻으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의 완화가 필요하다.

물론 옌 원장의 시각은 중국 국익을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루 앞으로 다가온 새해, 북핵 문제와 이를 둘러싼 한국 미국 중국 북한의 역학 구도를 읽어내는 중요한 참고 틀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윤완준 동아일보·채널A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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