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트럼프에 ‘예측 불가능성’은 욕? 천만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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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We must as a nation be more unpredictable. We are totally predictable. We have to be unpredictable. And we have to be unpredictable, starting now.”

흔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가리켜 ‘예측할 수 없는(unpredictable)’ 지도자라고 합니다. 오늘 얘기와 내일 얘기가 다르고,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성격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신, 정말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야”라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마 기뻐할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 칭찬이기 때문입니다.

위 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유세 때 자신의 정책방향을 설명한 중요한 연설의 한 부분입니다. 짧은 두 줄 문장에서 ‘(un)predictable’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등장합니다.

과거 미국은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입니다. 앞으로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존경을 받으려면 예측하기 힘든 나라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당시 트럼프를 지지하는 언론은 ‘예측 불가능성’을 트럼프의 ‘외교 독트린(doctrine)’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Unpredictability(예측 불가능성)’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 시절 성공의 신조였습니다.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보면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제안을 해서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무용담이 한가득 나옵니다.

그러나 사업적 거래에서는 통했을지 모를 예측 불가능성이 국가 경영과 외교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의 유명한 정치학자 하워드 진은 “국가 경영의 지식이 하나도 없는 트럼프의 헛소리(nonsense)”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예측 불가능의 답안지를 건네준다면 미국이 얻는 것은 ‘존경’이 아니라 ‘야유’가 될 것이라면서요.

우리나라도 얼마 전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을 경험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타결을 “great deal(멋진 협상)”이라고 축하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는 한미 FTA를 북한 협상과 연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과의 협상이 성공해야만 한미 FTA의 최종 타결에 응하겠다는 조건부 승인입니다.

중요한 외교 협상에서 상대국이 예측하기 힘든 답변을 주는 미국 대통령, 야유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존경할 수 없는 건 분명합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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