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30>레이건 저격사건 후 美국무장관 발언의 의미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8일 16시 49분


코멘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저격 후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 알렉산더 헤이그 당시 국무장관(왼쪽)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저격 후 백악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 알렉산더 헤이그 당시 국무장관(왼쪽)
“As of now, I‘m in control here.” (지금부터는 내가 주도하겠다)
영어 단어가 한국말로 번역되면서 뜻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요. ’Control‘이라는 단어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어에서 매우 많이 쓰이는 단어인데 ’지배하다‘ ’통제하다‘라고 번역되면 너무 ’센‘ 느낌이 난다고 할까요. ’(어떤 상황을) 주도한다‘는 뜻이 더 적절할 듯 합니다. 아니면 그냥 “콘트롤한다”한다고 말할 때 오히려 더 정확하게 의미가 전달됩니다.

그런 미묘한 의미를 가진 ’control‘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미국 정치인이 있습니다. 알렉산더 헤이그라는 인물인데요. 국무장관, 대통령수석보좌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 등 이력이 화려합니다. 이력서 두세 장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업적을 쌓은 정치인, 외교인이지만 그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control‘이라는 단어를 썼던 바로 그 순간입니다.

1981년 3월 30일 존 힝클리라는 암살범이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향해 6발을 총을 쐈습니다. 한 발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가슴에 맞았고 수행원들도 총상을 입었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저격 당시 혼란스러운 모습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저격 당시 혼란스러운 모습

냉전시대에 미국 대통령이 총에 맞았다는 것은 파장이 상상 이상입니다. 상황 관리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헤이그가 백악관으로 달려와 빨리 기자들을 모으라고 지시합니다. 워싱턴의 한쪽에서 대통령이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헤이그의 백악관 기자회견이 펼쳐집니다.

첫 문장은 헤이그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입니다. ’I‘m in charge’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어찌 보면 국무장관으로서 상황을 수습하겠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왕이다’는 의미가 더 강해 보입니다. ‘타인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욕을 드러내다니….’ 기자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고 합니다.

더 황당한 것은 헤이그가 설치고 나섰지만 미 헌법상 그는 2인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 대통령 유고 시 승계자는 ‘부통령, 하원의장, 상원의장, 국무장관, 재무장관’ 등의 순서입니다. 헤이그는 나중에 이런 저런 변명을 했지만 미국인들이 그를 용서할리 없죠. 헤이그는 이듬해 사퇴했습니다. 그는 198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했지만 공화당 경선에서 꼴지를 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는 ‘I’m in control moment‘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타인의 불행을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행동을 말합니다.

권력욕이 없으면 정치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정당당하지 않은 권력 의지는 뒤탈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헤이그 소동‘이 말해줍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