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의 오비추어리]‘팩맨의 아버지’ 남코 창업주 나카무라 마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일 15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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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아케이드 비디오게임 '팩맨(Pac-Man)'의 아버지인 일본 게임기업 남코(Namco) 창업주 나카무라 마사야(中村雅哉)가 22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팩맨은 2008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동전 게임기(판매량 29만대 이상)'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유력 시사지 '타임'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비디오게임 100선'에 팩맨을 선정하기도 했다.

나카무라는 1948년 요코하마공대 조선학과를 졸업한 뒤 1955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전동 목마 제작회사인 나카무라제작소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패망 이후 한국전쟁 등의 수혜를 입으며 소비가 점차 늘며 경제 재건을 추진하던 상황이었다. 나카무라는 1960년대 초 미츠코시백화점과 계약을 맺고 백화점 옥상에 목마를 설치했다. 그의 목마는 백화점 방문객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미츠코시 백화점은 여러 지점에 목마를 설치했다.

나카무라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비디오 게임 시장의 무한한 잠재력을 간파했다. 1972년 미국의 게임회사인 아타리가 세계 첫 상업 게임 '퐁'을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고 일본 게임회사들도 자체 개발한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오락실 게임)을 출시하며 크게 성장했다. 1970년대 일본에서 오락실 게임은 황금기에 막 들어서고 있었다. 오락실 게임기에 쓸 동전 때문에 시중에는 동전 유통이 어려울 정도였다.

나카무라는 1974년 일본 시장에선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타리 일본 법인을 거액 50만 달러를 주고 인수했다. 경쟁기업인 세가도 인수에 나섰는데 8만 달러를 제시했었다. 나카무라는 아타리 일본 법인 인수에 큰 돈을 투자했다.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자 적극적으로 젊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을 채용했다. 1977년에는 회사명을 나카무라제작소의 영문 약어인 '남코(NAMCO)'로 바꾸고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나카무라는 자체 개발한 게임으로 승부수를 걸었다. 님코는 1978년 핀볼 게임을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으로 옮긴 자체 개발 게임인 '지비'를 내놓았다. 이듬해에는 '갤러그'의 전신인 '갤럭시안'을 출시했다. 1980년에는 스물 다섯 살에 불과한 이와타니 도루(岩谷徹)가 개발한 팩맨을 선보였다.

이와타니는 피자에서 한 조각이 빠진 모습에 착안해 만든 캐릭터로 팩맨을 개발했다. 팩맨은 동그란 몸과 큰 입만 가진 게임 캐릭터가 유령을 피해 미로를 오가며 먹이를 먹어 치우는 게임이다. 내용이 폭력적이지 않으면서도 간단하고 중독성을 가진 작품이다. 그렇게 팩맨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나카무라는 1980년대 초부터 북미 시장에도 진출했고 일본 보다 더 큰 성공을 거뒀다. 팩맨은 북미 시장 진출 첫해에만 10만 대 이상이 팔렸다. 팩맨은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며 사회 현상까지 만들었다. 수백 가지 캐릭터 상품을 양산했다.

미국 ABC방송은 '팩맨' 애니메이션을 방영했고 이를 테마로 한 노래가 100만 장 이상 팔리기도 했다. 1982년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은 최고 점수를 달성한 8살 소년에게 축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팩맨은 1990년까지 35억 달러(2016년 물가상승을 고려할 때 76억 달러로 추정)의 수익을 거뒀다. 나카무라는 팩맨의 성공에 힘입어 남코를 일본에서 3대 게임기업으로 키웠다.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이 최전성기를 누린 1980년대 중반. 환갑을 훌쩍 넘긴 나카무라는 직접 모든 게임을 해볼 정도로 소비자 친화적인 기업인이었다. 당시 경쟁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직접 게임을 즐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카무라는 시제품이 제작될 때는 하루 23시간 동안 게임기를 다루기도 했다. 그런 한편으로 젊은이들의 게임 중독을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게임에 몰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카무라는 2002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고문으로 남았다. 남코는 2005년 완구기업인 반다이와 합병해 반다이남코라는 통합 법인으로 출범했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68번째 부자로 기록됐다. 반다이남코는 30일 나카무라의 구체적인 사인을 밝히지 않고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식은 가족 친지들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향후 별도로 추모식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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