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케이팝 조립 중]<6> 최종 기지 서울 청담동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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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이 부족해” 데모곡 놓고 韓美 화상토론 치열

13일 오후 서울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사옥. 테디 라일리(왼쪽 위 화면 안)와 A&R 팀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작곡가 도미니크 로드리게스(가운데 외국인)는 “작곡가와 A&R가 이런 식으로 직접 소통하는 시스템을 처음 접하고 놀랐다. 객관성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방식”이라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3일 오후 서울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사옥. 테디 라일리(왼쪽 위 화면 안)와 A&R 팀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작곡가 도미니크 로드리게스(가운데 외국인)는 “작곡가와 A&R가 이런 식으로 직접 소통하는 시스템을 처음 접하고 놀랐다. 객관성을 높일 수 있는 훌륭한 방식”이라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다들 데모평가표(데모곡 채점표) 받았죠? 자, 그럼, 테디 연결합니다.”

1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8층 A&R(아티스트 앤드 레퍼토리) 팀 회의실. 이성수 SM 프로듀싱실장의 말에 한국인 A&R 담당자 15명이 중앙의 대형 모니터를 향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50m² 넓이의 직사각형 방. A&R 팀원 중엔 챙이 평평한 힙합풍 모자를 쓴 이도 있다. 팀원들은 트렌드에 민감한 20대 중반∼30대 중반으로 주로 고학력의 음악 전공자나 애호가다. 잠시 후 모니터에 같은 모양의 모자를 쓴 미국 흑인 작곡가 테디 라일리의 영상이 나타났다.

“모두들 안녕! 나 지금 (미국) 애틀랜타야.” SM 회의실에는 백인 작곡가 도미니크 로드리게스도 동석했다. 화상회의 시스템이 켜지는 순간, 애틀랜타와 서울 사이의 14시간 시차는 ‘0’으로 수렴했고 3개의 인종이 한 테이블 앞에 모여 앉았다.

동아일보는 최근 두 달간 미국, 스웨덴, 노르웨이, 태국, 중국, 일본에서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의 조각들(작곡 안무 공연기획 홍보 등)을 만드는 현장을 확인했다. 이날 회의는 케이팝의 조립 과정을 베이스캠프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런 A&R 회의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시간 SM 사옥 5층 ‘블루오션’ 스튜디오. 엑소엠의 멤버 첸이 중국어 노래를 녹음하고 있다. 치밀한 A&R 과정을 거친 곡은 이렇게 다시 세계시장으로 나간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같은 시간 SM 사옥 5층 ‘블루오션’ 스튜디오. 엑소엠의 멤버 첸이 중국어 노래를 녹음하고 있다. 치밀한 A&R 과정을 거친 곡은 이렇게 다시 세계시장으로 나간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SM은 1990년대 중반 국내 최초로 전문 A&R 시스템을 도입했다. 팀원들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노래를 수집해 이에 어울리는 가수에게 연결해 음반을 구성한다. 이수만 대표 프로듀서 직속으로 운영된다. 회의도 8층 사옥의 최고층에서 열린다. A&R 팀이 케이팝 생산지의 ‘두뇌’인 셈이다.

이성수 실장은 “일주일에 150∼200개의 데모곡이 전 세계에서 밀려들어 온다”고 했다. “A&R 팀 전원이 모든 곡을 채점합니다. 총점을 평균 내서 상위 10곡 정도만 회의 안건으로 올리죠. 중요한 곡은 이수만 프로듀서와 따로 논의합니다.”

팀원들이 손에 든 데모평가표는 세계 작곡가들의 곡에 점수를 매긴 성적표다. 컴퓨터의 ‘인터내셔널 A&R 맵’에는 세계지도 위로 작곡가 400여 명의 프로필이 위치와 함께 표시된다. 모니터 속의 라일리가 말했다.

“먼저 들려줄 ‘세이 예’는 50%쯤 완성된 곡이야. 새로운 장르를 만들고 싶었어. 의견들 줘.” 노래가 재생되자 흥겨운 리듬에 애틀랜타의 라일리와 서울의 젊은 A&R 팀원이 쓴 모자가 동기화되듯 동시에 위아래로 까딱댔다.

라일리는 1980, 90년대 R&B와 힙합을 섞은 뉴 잭 스윙을 탄생시켜 마이클 잭슨, 보비 브라운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프로듀서다. 레이디 가가의 곡도 만들었다. 2011년 소녀시대의 세계시장 데뷔 곡(‘더 보이스’)을 프로듀스하며 SM과 협업을 시작했다.

“스톱 잇(정지)! 다음으로 넘어갈까?”(라일리) 서울의 A&R 직원들이 고개를 젓더니 팝 거물을 향해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낸다.

“‘세이 예’는 여름풍 댄스곡인데 후렴구 멜로디가 하향 진행하니 흥이 떨어지는데….” “편곡에서 축제 분위기를 좀 더 살렸으면 해요.” “잠깐, 노래가 너무 유희적으로만 흐르면 곤란해. 가창력을 조명할 부분도 필요하잖아.”

꼼꼼히 듣던 라일리가 말한다. “이런 비판들, 너∼무 좋아! ‘더 보이스’ 때도 우리 두세 달 이런 과정 거쳤잖아. 굿!”

이런 화상회의는 이곳 A&R 사무실 겸 회의실에서 매주 수시로 열린다. 직원들은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샤이니 등 저마다 담당하는 가수가 따로 있다.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데모곡을 평가하고 어떤 가수에게 어울릴지를 수시로 논의한다.

‘애틀랜타의 라일리’가 다음 곡을 재생했다. “이건 내가 만들었지만 후렴구가 맘에 쏙 들어. ‘노 디기티’(라일리가 속한 R&B 그룹 블랙스트리트의 1996년 히트곡)처럼 중독성 있는 노래야. f(x)의 ‘핫 서머’처럼 후렴구를 이을 좋은 절을 얹어야겠어. 우리에겐 ‘반짝 인기(hit)’가 아니라 판을 엎는 ‘스매시(smash)’가 필요해. 세계라는 큰 사과의 씨앗에 화살 끝 제대로 꽂아야지. 올해에는 우리 다같이 도전하자. 오케이?”

라일리의 열정적인 말투에 서울의 직원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애틀랜타는 세계 최고의 프로듀서들이 모이는 곳이야. 세계적인 작곡가들이 내 트위터에 ‘어떻게 하면 케이팝 가수와 작업할 수 있냐’고 물어와. 당당히 케이팝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지. 기회가 되면 애틀랜타에들 놀러와. 여기도 케이팝 팬이 많거든. 그럼, 다음 회의 때 봅시다!”(라일리)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청담동#데모평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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