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홍색 전략’으로 자국산 비중 높여… 덩치 작은 한국기업들 흔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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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제조업 골든타임을 지켜라]8대 주력산업 점검<5>석유화학

22일 인천 서구 봉수대로 SK인천석유화학 신공장의 아로마틱 조정실. 2012년부터 2년간 1조6200억 원을 투자해 만든 신공장의 전 공정을 컴퓨터로 조정, 관리하는 곳이다. 수십 개 모니터에는 128만 m² 부지에 조성된 모든 생산설비의 정상적인 가동을 알리는 표시가 떠 있다. 이 공장에선 초경질원유와 나프타에서 추출한 순도 99.9%의 파라자일렌(PX)을 연간 130만 t, 하루 3500t씩 쏟아낸다.

생산된 PX는 전용 파이프라인을 통해 약 6km 떨어진 부두로 옮겨진 뒤 거의 전량이 중국 다롄(大連), 장인(江陰)으로 향한다. 중국에서 대부분 화학제품 중간재료인 고순도테라프탈산(PTA)의 원료가 된다. PTA는 최종 제품 격인 합성섬유나 페트(PET), 필름을 만드는 데 쓰인다. 중국이 PTA 생산을 꾸준히 늘리면서 PX 시황은 연일 호황이다. 최근 t당 마진(나프타 스프레드)이 500달러를 훌쩍 넘는다.

하지만 이곳을 총괄하는 주용표 SK인천석유화학 아로마틱3팀 기술장의 설명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그는 “중국이 계속해서 PX 자급화를 꾀하고 있다. 아직 시공이나 운영 능력이 한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덕분에 수출 호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인도,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 중국, 석유화학제품 자급화 시간문제

한국 석유화학산업에 중국은 ‘양날의 칼’이다. 석유화학 제품이 핵심 수출 품목으로 자리 잡은 건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제조업 규모가 방대한 중국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대중 수출 비중은 2009년 51.5%로 정점을 찍은 후에도 꾸준히 절반 가까이 된다.

그런 만큼 중국의 시장 변화에 한국 기업들의 희비도 수시로 엇갈린다. 최근 2, 3년간의 저유가 기조와 중국 정부의 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중국 내 석탄분해설비(CTO) 가동률 감소로 한국 기업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품목별로 보면 다른 흐름이 나타난다. 예컨대 2010년 이후 합섬원료의 대중 수출이 급감했는데, 중국이 합섬원료의 일종인 PTA 자급률을 급격히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PX 수출량 확대로 이어지긴 했다. 다만 중국이 PX 자급률도 끌어올리면 한국 수출량은 순감하게 된다. 에틸렌, 프로필렌 등 다른 주력 제품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중국의 목표는 석유화학산업 가치사슬을 모두 자급화하겠다는 것이다. 원료나 중간재를 수입하는 대신 국산화 비중을 늘리는 이른바 ‘홍색 공급망’ 전략이다. 중국 정부는 2016년 발표한 ‘13차 5개년 규획(계획)’에서 이전까지 추진했던 양적 성장 대신 2020년까지 산업 구조조정, 석탄 및 셰일가스로의 원료 다변화와 함께 수입에 의존했던 기초유분 및 중간원료 설비 증설을 통해 질적 성장을 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주요 석유화학제품 자급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동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완전 자급을 달성한 품목 중 과잉 생산이 이뤄지는 품목의 생산설비는 구조조정하고 자급률이 부족한 품목이나 고부가가치 생산 설비를 확충하겠다는 계획”이라며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글로벌 석유화학업계 재편도 한국에 위협

한국의 석유화학 경쟁력은 설비 운영 능력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미국, 중국 등 대규모 생산설비를 보유한 국가들에선 정기보수 기간이 연장되거나 설비 고장으로 인한 폐쇄가 잦지만, 한국 기업들엔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글로벌 설비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석유화학제품의 공급이 부족할 때마다 한국 기업은 톡톡히 수혜를 누려왔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부족한 점도 적지 않다. 미국과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의 석유화학제품 생산국이지만 개별 기업별로 보면 규모 경쟁력에서 밀린다. 지난달 미국화학학회가 발행하는 전문잡지 C&EN이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 증감률을 종합 분석해 발표한 ‘2017 글로벌 톱 50’에 따르면 LG화학이 처음으로 10위에 랭크됐다. 1위는 독일 바스프, 2위는 미국 다우듀폰, 3위는 중국 시노펙이다. 나머지 50위 내 한국 기업은 롯데케미칼(22위), SK이노베이션(38위), 한화케미칼(49위)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우와 듀폰의 합병, 중동 산유국의 석유화학산업 진출 등 글로벌 석유화학업계 재편은 자본이 적고 덩치가 작은 한국 기업에 위협적이다.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대한 기술력도 아직 부족하다. PX 등 고부가가치 상품 공장은 대부분 미국 기업의 공정 설계 라이선스를 적용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기술 수준은 일본을 100으로 할 경우 86.4로 중국(76.4)에는 다소 앞서지만 미국(98.7), 유럽(95.7)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장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면서 설비 대형화와 연구개발(R&D),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술 확보가 필요하다. 석유가 아닌 셰일가스 등으로의 원료 다변화를 통해 유가 민감도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중국 홍색 전략#자국산 비중#석유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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