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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채소장사로 3자녀 키워… 둘째가 올해 시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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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채소장사로 3자녀 키워… 둘째가 올해 시인 등단”

이지훈기자 입력 2017-11-07 03:00수정 2017-11-0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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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골목시장] 자양시장의 터줏대감들 오랜 전통이 있어 자양전통시장 사람들의 추억도 길다. 리어카 상인으로 시작해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자양전통시장을 지키는 터줏대감이 있다. 채소 가게를 운영하는 김정성 씨(73)다. “39세 때 친구와 하던 사업이 망했어. 리어카 놓고 파라솔 치고 장사했지. 닭장사도 하고 생선, 과일도 팔고 슈퍼도 했어. 그러다가 채소한 지는 30년이 넘었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김 씨의 세 자녀는 시장에서 나고 자랐다. 채소를 팔아 두 명의 딸과 막내아들 모두 대학원까지 졸업시켰다. 자녀 이야기가 나오자 김 씨는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우리 둘째 딸이 시인이야, 시인. 올 초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둘째 딸 김기영이가 당선됐어. 여기 시장 아니었으면 (세 자녀 키우는 건) 가당치도 않았지.”

오랜 기간 시장을 지킨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터를 잡은 딸도 있었다. 낡았지만 늘 사람들로 북적였던 이곳을 이은자 씨(39·여)는 “어릴 땐 놀이터였는데 지금은 고향이라고 부르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자양전통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자양동에서 태어나 근처에서 초등학교과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한 ‘자양동 토박이’다. 이 씨의 어머니는 약 40년 전부터 이곳에서 채소를 팔았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번 돈으로 딸 셋을 키웠다고 했다. 이 씨를 포함한 세 자매는 모두 자양동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어렸을 때부터 늘 시장 주변을 오가며 자랐다”며 “학교 끝나면 시장으로 와서 같이 물건도 치우고 엄마 돕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결혼 후 다른 지역에서 살다 4년 전 이 씨는 두 자녀와 함께 자양동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하는 채소 가게 옆에 이 씨는 반찬 가게를 차렸다. 어머니를 따라 자양동에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그의 자녀인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 아이는 이 씨처럼 이곳 자양전통시장에서 먹고 뛰놀며 지낸다. “아무래도 시장엔 어린아이가 귀하다 보니 귀여움을 독자치하고 있죠. 어쩌다 보니 3대가 이곳 시장에서 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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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동에서 나고 자라진 않았지만 자양동을 토박이보다 더 사랑하는 상인도 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자양동주민센터에 매년 500만 원씩 기부하는 ‘소문난 만두집’의 장춘조 씨(59)다.

3일 오후에 찾은 장 씨의 5평 남짓한 가게에는 기름 냄새가 풍겼다. 찹쌀도넛, 꽈배기, 찐빵, 만두, 튀김 등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가판대는 가득했다. 11월 초라 낮이어도 쌀쌀했지만 장 씨는 기름때 묻은 반팔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밤낮 돈을 벌지만 스스로에겐 인색하다는 장 씨는 옷 한 벌 안 사 입는다고 했다. “자양동 와서 먹고살 만해졌으니 돌려드리자는 거지요. 지금은 여기 살기도 하고. 허허.”

2014년 12월 장 씨의 기부 인생은 시작됐다. 첫해인 2014년엔 490만 원, 2015년엔 502만 원 그리고 지난해엔 512만 원을 냈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장 씨는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는 “경상도 고성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살았는데 동네에서 제일 못살았다”며 “쌀이 없어 고구마나 나무줄기 삶아 먹던 기억 때문에 늘 트라우마에 시달렸는데 그걸 치유해보고자 시작한 기부”라고 말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살다 이젠 도움을 줄 수 있어 장 씨는 기쁘다고 했다. “그래도 집사람 아니었으면 가능하지도 않았어요. 500만 원이 어디 작은 돈인가요. 흔쾌히 허락해 주니 좋은 일하며 사는 것이지요.”

매년 수백만 원을 기부하는 그도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린 건 아니었다. 2002년 5월 이곳 자양전통시장에 오기 전 장 씨 부부는 방황을 거듭했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서 도넛 가게를 하다가 아내의 무릎에 물이 차 큰 수술을 하게 된 것. 장 씨는 급하게 일자리를 구하고 아내는 보험설계사로 일했다. 부부가 맞벌이로 고군분투해도 호주머니에 모이는 돈은 없었다. 부부는 “힘들어도 다시 시작해보자”며 시장에 도넛 가게를 열었다.

지금은 시장 명물이 됐다. 아들(27)도 장 씨에게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맏딸 결혼까지 시켰다며 장 씨는 좋아했다. “여기 시장 아니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행복이지요. 평생 여기에서 도넛 튀기며 동네 사람들 돕고 살겠습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자양시장#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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