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보다 비관적인 2030… “노오력해도 계층상승 불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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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일해 봤자 ‘사축’(회사 가축이라는 말로 직장인을 비하하는 신조어)밖에 더 되겠어요. 그런데도 ‘노오력’(노력을 평가절하하는 신조어)을 해야 하나요.” 서울 상위권 대학을 나온 박모 씨(29)는 ‘베짱이’처럼 산다. 취업을 포기하고 노래방이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지만 미래에 대해 별생각이 없다. 그저 그날그날만 잘 넘기면 된다. 그는 “열심히 노력해서 먼저 취업한 친구들도 희망이 없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1970, 80년대 경제 성장의 기적을 만든 자수성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국 사회의 좁아진 기회의 문틈에 끼여 ‘노력해도 제자리’라고 믿는 20, 30대 ‘노오력 세대’들의 절망감도 깊어지고 있다.
○ 60대보다 더 절망하는 ‘노오력 세대’

 
동아일보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2월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4%가 ‘열심히 일해도 계층 이동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응답자의 37.9%, 30대의 51.8%가 이같이 답했다. 경제 활동 막바지에 접어든 60대 이상(34.3%)보다 계층 이동 가능성을 더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1964년 동아일보의 민생 관련 국민 여론조사에서 20대는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적 응답이 33%를 차지해 전 연령대 중에서 가장 높았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이 겹친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의 대물림’으로 계층 구조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교육과 일자리를 통해 더 나은 계층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굳어진 것이다. 직장인 이모 씨(31)는 “한 동료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별로 없는 ‘흙수저’들은 열심히 노력해봐야 결국 치킨집 사장님으로 끝난다’고 말하는 걸 듣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한국 미국 중국 일본의 주식 부자 상위 40명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산으로 부자가 된 ‘상속형 부자’ 비율(62.5%)이 가장 높았다. 한국보다 자본주의 경험이 긴 미국과 일본은 상속형 부자 비율이 각각 25%, 30%에 그쳤다. 1980년대 이후 경제가 급성장한 중국은 상속형 부자가 2.5%에 불과했다. 한국에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같은 신흥 ‘창업 부자’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 ‘밀레니얼 세대’ 일자리 갈등 우려

 특히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고통이 극심하다. 세계적으로도 밀레니얼 세대는 로봇과 인공지능(AI)에 밀려 일자리 시장에서 고전하는 세대로 꼽힌다. 앞 세대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도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사회에 대한 절망감이 큰 세대로 불린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 사회의 일자리 기회가 적다”는 응답이 67.6%를 차지했다. “일자리 창출 문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답변도 56.6%를 차지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기득권 노조’(27.6%)와 ‘경직된 산업규제’(25.9%)를 꼽은 응답자가 많았다. 이어 ‘로봇 인공지능 등 자동화 기술’(15.8%) ‘공장 해외 이전’(12.7%) ‘국내 외국인 노동자’(9.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패자 부활전’의 기회가 없는 한국 사회의 문제도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직장에서나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을 때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1%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대 간, 계층 간, 내외국인 간 일자리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크다. 이번 조사에서 자녀 세대와 일자리를 나눌 의향이 있느냐란 질문에 응답자의 54.1%만 ‘그렇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개천용’(‘개천에서 용 난다’의 줄임말)이 등장할 수 있는 실력 중심의 사회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만이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력만 있으면 창업을 통해 자수성가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겪고 있는 ‘스킬 갭’(산업 현장이 원하는 기술과 실제 보유한 역량의 차이)을 줄여 나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이 세분되고 전문화되면서 대학 졸업장만으론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턴이나 중소기업에 취업해 숙련도를 높이고 더 나은 일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일자리 루트’를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성모 mo@donga.com·김지현 기자
#노력#기회#자수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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