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대만’ 현상 극복하자”… D스쿨 세워 창업 인재 육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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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희망이다]창업가 키우는 글로벌 공대

 “좀 더 재미있게 강의하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방문한 대만 타이베이(臺北) 국립대만대 수이위안(水原) 캠퍼스의 D스쿨 강의실. 20, 30대 남녀 7명이 새로 개설한 강좌를 어떻게 진행할지 토론하고 있었다. 교수법을 고민하는 이들은 교수나 강사가 아니다. 기계, 건축, 통계, 조경 등 다양한 이공계에서 모여든 학생들이다. 이들이 올여름 제안한 프로젝트가 D스쿨의 정식 강좌로 채택돼 강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류젠청 D스쿨 부단장은 “학생들이 듣고 싶어 하는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교수가 주도하는 교육의 틀을 깨고 학생이 자유롭게 강좌를 제안하도록 했다. 사제 관계가 엄격한 대만에서 시도된 변화라 의미가 크다”라고 소개했다.

○ D스쿨… “생각을 디자인하라”

국립대만대 이공계 학생들이 타이베이 수이위안(水原) 캠퍼스 내 강의실에 모여 공간활용법에 대한 강의안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어떻게 설명할지 논의하고 있다. 왼쪽 목제 구조물은 좁은 강의실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직접 만든 것이다. 타이베이=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국립대만대 이공계 학생들이 타이베이 수이위안(水原) 캠퍼스 내 강의실에 모여 공간활용법에 대한 강의안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어떻게 설명할지 논의하고 있다. 왼쪽 목제 구조물은 좁은 강의실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직접 만든 것이다. 타이베이=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국립대만대의 D스쿨은 미국 스탠퍼드대의 유명한 창업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D스쿨을 들여온 것이다. D스쿨은 디자인스쿨(Design school)의 약자로 생각을 디자인하는 법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D스쿨에서 창업의 기초인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각종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기른다.

 국립대만대는 한 기업가가 출자한 기금으로 ‘대만판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지난해 D스쿨을 설립했다.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과하면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에만 2000명이 지원해 500명이 선발됐다. 창업을 계획하는 공대생이 주를 이룬다.

 이곳 강의실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복층 목제 구조물도 D스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학생들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건축법’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강의실을 복층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하지만 타이베이 시의 건축 규제로 건물에 손대는 것이 불가능해 건물 안에 복층 구조물을 들여놓아 같은 효과를 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린잉루 씨는 “학교가 자재든 가구든 우리가 달라는 것을 다 제공하니 무엇이든 과감하게 시도하고 싶어진다”라고 말했다.

○ 한국과 닮은꼴 대만, 창업으로 청년 실업 타개

 한 기업가가 이런 혁신적 교육에 사재(私財)를 쏟고 이에 화답하듯 대학도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유는 대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이 직면한 문제는 한국과 비슷하다. 대만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보다 약간 낮은 1%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경제가 어려워지며 수출길이 막혔는데 산업 구조는 한국처럼 반도체, 전자제품 등 수출만 바라보는 제조업에 치우쳐 내수를 살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

 실업률도 최근 2년간 한국과 비슷한 3%대였다. 게다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가 커진 중국과 대치하며 생겨나는 정치적 불안도 한국의 북한 리스크처럼 커졌다. 한국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하듯 대만 청년들은 자국을 ‘귀신의 섬(鬼島)’으로 부른다.

 대만은 창업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박한진 KOTRA 타이베이무역관장은 “대만 정부는 올 9월 첨단 정보통신(IT) 스타트업을 2023년까지 꾸준히 지원하는 ‘아시아실리콘밸리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창업 드라이브를 한국보다 더 강하게 걸고 있다”라고 말했다.

○ 졸업한 ‘창업 재수생’ 지원하는 대학

 대만 창업 동력의 한 축인 국립대만대는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NTU개라지’와 ‘이노베이션&인큐베이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D스쿨에서 창업의 기초를 배운 학생들은 NTU개라지와 이노베이션&인큐베이션센터에서 실전에 들어간다.

 2013년 캠퍼스에 설립된 창업 실습 공간 NTU개라지에는 D스쿨의 창의 창업 도전 대회에서 선발된 창업팀을 중심으로 30여 팀이 입주해 있다. 사무실은 물론 법률 회계 컨설팅이 무료다. 매년 봄 창업팀별 대표 상품을 언론과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행사도 연다. 현재 입주한 팀원의 75%가량이 대기업이나 열악한 스타트업에서 방황하던 졸업생들이다. 궈자유 NTU개라지 담당자는 “창업하려는 졸업생들이 사무실을 마련하고 투자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3년 전부터 졸업생들까지 지원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 대학 동문으로 꾸려진 기업인들의 모임에선 정기적으로 창업 대회를 열어 유망한 후배 기업가를 발굴해 지원한다. NTU개라지에서 여행 콘텐츠 앱을 개발 중인 딩샹춘 씨는 “선배들을 개인적으로 수소문하려면 어려운데 이곳에서는 대기업 중간 간부 선배들을 쉽게 찾아 상담하고 투자도 받는다”라고 말했다.

 국립대만대가 2002년 민간 기업과 함께 설립한 이노베이션&인큐베이션센터에는 NTU개라지 출신 창업팀을 비롯한 스타트업 30여 개가 입주해 있다. NTU개라지 입주 심사 때보다 더욱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이들은 시세보다 저렴하게 센터의 사무실을 빌린다. 센터의 추천을 받으면 정부 창업기금을 사업비의 80%까지 낮은 금리에 대출받을 수 있다. 류쉐위 이노베이션&인큐베이션 센터장은 “1970년대를 이끌었던 이공계는 고도성장 시대가 끝나자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공계의 기술력을 창의적으로 사업화하는 창업 교육과 지원 제도가 더욱 절실해졌다”라고 밝혔다.
 
국립대만대는 1928년 설립된 종합대학이다. 미국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의 올해 세계 대학평가에서 144위다. 서울대(119위)보다는 낮고 KAIST(187위)보다 높다. 10개 단과대 가운데 4개가 이공계다.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과 마잉주(馬英九),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등 유력 정치인과 기업가를 배출했다. 연구역량이 강한 대학을 추구해 학부와 대학원 규모가 비슷하다.
 
타이베이=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국립대만대#d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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