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中企성장 이끌 ‘관계금융’ 키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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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2000년 이후 국내 금융 산업은 대형화 과정을 거치면서 크게 성장했다. 다만 벤처나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과 신용평가를 통한 데이터금융이 금융 산업의 외형 성장에만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는 ‘관계금융(Relationship Banking)’이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위축시켜 기업과 금융이 질적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 혁신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이 금융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관계금융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관계금융은 장기간의 거래 활동을 통해 축적된 정성적, 정량적 정보를 활용해 기업의 생애주기에 맞게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계량화된 재무제표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업 특성(신용력, 관계, 기술력 등)에 기초한 동태적 피드백이 가능하다. 주거래은행인 금융기관이 기업과 장기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자금지원, 금융투자, 경영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관계금융은 4차 산업혁명의 틀 안에서 재조명돼야 한다.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기술금융 역시 엄밀히 따지면 관계금융의 영역에 있다.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관계금융은 기업 성장생태계의 하부구조를 담당하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은 주거래은행 제도를 통해 기업밀착형 관계금융을 강화하는 추세다. 관계금융의 근간인 독일의 하우스방크는 주로 정부 소유의 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은행 등이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주거래은행의 역할은 단순히 대출에 그치지 않고 지분 투자를 통한 투자이익 공유, 자금 수요에 따른 대출 지원, 경영컨설팅 등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국내 금융기관의 주거래은행 제도는 거래금융 성격이 강한 ‘무늬만 관계금융’에 머물고 있어 중소기업의 성장을 견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여전히 신용력이 취약해 담보대출 의존도가 높고, 자본시장을 통한 조달이 어려워 은행여신에 대한 집중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 현실에 맞는 관계형 금융모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금융 산업이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할 시점에서 관계금융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관계형 기술금융’은 이에 적합한 테스트 베드로 평가할 수 있다. 먼저 관계형 기술금융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여신 기반 기술금융의 질적 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기술금융대출은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을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기업의 부채구조 개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스타트업의 경우 기술사업화 과정에서 부채건전성이 악화돼 부실화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기술금융이 기업의 생애주기에 따른 투·융자 패키지를 제공해야만 기술사업화에 실패하는 데스밸리(death valley)를 극복할 수 있다.

또 관계형 기술금융체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산업 특성을 고려한 기술력 평가(세분화·전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보증기금이나 일부 국책은행이 산업 전반에 걸친 기술 가치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농산업의 경우 기반산업, 생산요소 산업, 정보기술 및 바이오 기술 등을 아우르는 융·복합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으나 기존의 평가체계가 농업부문의 기술가치 특성을 얼마나 정교하게 진단할 수 있을지 짚어볼 대목이다.

관계형 기술금융을 시발점으로 한국형 주거래은행 제도 등 관계형 금융모델에 대한 논의가 정책 이슈로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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