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정책도 ‘벤처’처럼 거침없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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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산업부 차장
허진석 산업부 차장
독일 뮌헨공대에는 아주 놀라운 학사 정책이 있다. 박사학위 수여 여부를 사실상 대기업이 결정한다.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회사 BMW와의 산학협력 프로그램이 그런 식이다.

BMW는 미래 자동차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뮌헨공대에 연구과제로 제안한다. 대학은 박사학위를 줄 만한 과제를 골라 대학원생들에게 공지하고,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과 관심에 따라 적절한 과제를 선택한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학생들이 과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마치면 BMW가 그 성패를 판별한다. 학위 수여 방식의 혁신이다. 더 놀라운 점은 BMW가 그 학생을 채용해 사내벤처까지 설립하는 점이다. 미래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자본과 연구시설, 인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상용화에 성공하면 정식 기업으로 독립시키게 되니 학생의 연구 결과물을 심사할 때부터 허투루 할 수 없는 구조다.

뮌헨공대는 학생이 설립하는 기업에 자본금을 출자해 돕고, 향후 상업화에 크게 성공하면 자본을 회수해 교육에 재투자한다. 학생과 대기업과 대학이 얻는 몫은 명확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튼튼한 벤처기업도 탄생한다. 학생이 대기업 사내벤처를 거쳐 벤처기업까지 차릴 수 있는 기회가 부러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영국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금융산업에서 미국 등의 위협이 느껴지자 핀테크 산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한 ‘규제 샌드박스(제품, 서비스를 내놓을 때까지는 규제를 미적용하는 정책)’가 바로 영국이 핀테크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선택한 과감한 정책이다.

사실 벤처기업 육성 정책으로 먼저 세계의 부러움을 산 나라는 한국이다. 1997년 8월 제정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이 벤처기업 지원을 위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마련되는 등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후 벤처 거품 등으로 부작용이 있기는 했지만 지원 정책이 벤처기업의 특성에 맞춰 신속하게 마련된 점은 평가하고 싶다. 당시 벤처기업협회에서 일했던 인사는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에서 온 의원과 관료들은 한국이 어떻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벤처기업육성법을 만들게 됐는지, 벤처기업은 어떻게 정의하는지, 지원 정책은 뭐가 있는지 전방위적으로 알아낸 뒤 돌아가곤 했다”고 회상했다.

벤처기업법이 신속하게 마련되던 당시는 실직자가 급증해 경제 회생과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높은 상황이었다. 지금 한국 사정도 다르지 않다.

18일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정책금융에서 연대보증 제도를 내년 말까지 폐지하기로 했다. 벤처기업계는 꾸준히 연대보증 폐지를 주장해왔지만 정부는 기술신용 등급과 신생 기업 위주로만 이를 적용해 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찔끔찔끔 대상을 넓히다가 이번에 아예 제한 없이 폐지하기로 했다. 벤처업계에서는 이를 반기면서도 좀 더 일찍 과감하게 시행했더라면 많은 젊은이가 새 기회를 가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뮌헨공대와 영국 정부처럼 말이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벤처(모험)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 결과도 모험적일 수밖에 없다. 기술을 평가해 자금을 제공하는 기술보증기금에 적자를 용인하지 않거나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면서 100% 회수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모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면 여느 정책과는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허진석 산업부 차장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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