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농장과 공장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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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부 차장
김유영 산업부 차장
“동료 닭들과 사이가 어땠나요?”

미국 포틀랜드의 한 레스토랑. 한 커플이 닭요리를 주문하며 종업원에게 묻는다. 처음엔 닭의 품종과 사육지역을 물어보더니 유기농 인증 여부, 닭이 먹은 음식, 사육장 크기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다. 종업원은 닭의 계보와 사육 이력을 줄줄 읊어줬지만 그래도 만족하지 못한 이들. 급기야는 닭들의 친밀도와 스트레스 수준까지 물어본다. 종업원이 머뭇거리자 이들은 ‘닭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직접 확인하고 오겠다’며 농장을 찾아가고야 만다.

‘힙스터의 성지’로 통하는 포틀랜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미국드라마 ‘포틀랜디아’의 한 장면이다. 음식에 유난 떠는 힙스터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과장해서 그렸다. 미국은 공장식 축산의 대표 국가로도 꼽히지만 최근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음식에 신경 쓰는(food-conscious) 소비자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에게 부응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곳이 아마존이 최근 인수한 유기농 슈퍼마켓인 ‘홀푸드’다. 이곳은 고기를 납품하는 농장주들에게 밀집 사육을 금지하고 항생제, 성장촉진제 등을 쓰지 못하게 한다. 매장에선 가축의 방목 여부, 가축 이동의 자유도 등 100여 개의 기준을 따져 동물복지 등급을 5개로 자체적으로 매겨서 판다. 판매대에는 축산업자의 얼굴과 농장 사진 등이 함께 있다. 소비자들은 정부의 일률적인 유기농 인증 마크에 기대지 않고, 자신이 먹을 고기가 어떤 환경에서 사육됐는지 등을 살핀다. 시중 가격보다 20% 정도 비싸도 기꺼이 구입한다.

축산 시스템 관리 수준을 넘어서 기술적 혁신을 도입하려는 사례도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클린미트(청정고기) 운동에 동참하기로 하고 고기 스타트업인 멤피스미트에 거액을 투자했다. 이곳은 동물의 자기복제 세포를 배양해 단백질로 이뤄진 인공 고기를 만든다. 게이츠는 식물 단백질로 스테이크를 만들거나 콩 성분으로 쇠고기 버거를 만드는 기업에도 투자한 바 있다. 스스로 생태적 축산을 실천하는 기업가도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채식을 원칙으로 하지만 불가피하게 육식해야 할 때에는 자신의 뒷마당에서 직접 도축한 고기만 먹는다.

국내에서도 살충제 계란 파동을 계기로 음식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1인당 육류 소비는 1970년 5.2kg에서 2010년 41.1kg으로 8배로 폭증했다. 같은 기간 인구는 1.5배로 늘었을 뿐이다. 좁은 땅에서 ‘싸게 많이’ 생산하기 위해 밀집 사육이 불가피해진 이유다. 실제로 닭들의 사육환경은 썩 유쾌하지 않다. A4용지 한 장도 안 되는 공간에 닭들을 가둬 키우다 보니 닭똥에서 암모니아 가스가 나와 호흡기 질환에 걸리거나 벼룩 빈대 진드기 등으로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발전한 만큼 음식에 대한 감수성도 높아져야 하지만 그 속도가 더뎠다고 지적한다. “당신이 먹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다. 그간 먹은 음식들이 바로 당신의 몸을 만든다는 뜻이다. 싸고 많은 식재료를 생산하는 공장식 축산에 익숙해지면 결국 자신이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무조건 싸면서 좋은 음식이란 없다. 이제라도 음식과 식재료, 동물복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비자의 의식이 올라가면 기업들도 그에 맞게 대응할 것이다. 농장에 있는 닭들의 안녕(安寧)을 묻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김유영 산업부 차장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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