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무너지는 부동산시장]<상> 대형사업 줄줄이 좌초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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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무의도 개발 10년 파행… 주민들 “올봄 대출폭탄 터진다”

21일 오전 11시 인천 중구 용유동 내 무의도 선착장. 근처에는 원색 간판을 단 조개구이 식당 10여 곳 늘어서 있다. 오가는 사람은 반나절이 지나도록 등산객 몇 명뿐이었다.

인천시가 이곳에 2030년까지 317조 원을 들여 중국 마카오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를 짓겠다는 ‘장밋빛’ 계획을 세우고 민간 사업사와 기본협약을 체결했던 게 2007년. 하지만 ‘제2의 마카오’를 꿈꿨던 이곳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부동산 개발 예정지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선착장을 지나 섬 안쪽으로 들어가니 가건물의 숙소 수십 채가 늘어서 있었다. 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 주민은 “보상을 노리고 ‘알박기’한 건물들이 섬을 점령한 상태”라며 “우리는 저 건물들을 ‘포로수용소’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미 섬 전체에 ‘대출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며 “올봄이 지나면 누군가 자살할지도 모른다며 주민들끼리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 개발 난항이 앗아간 주민의 일상

인천시와 개발 시행사인 에잇시티는 인천국제공항 서쪽 용유도와 무의도를 묶어 80km² 규모로 해상관광도시를 지을 계획이다. 단일 건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메가스트립’(길이 3.3km, 폭 880m의 돔 구조물), 5만 석 규모의 초대형 공연장을 포함하는 한류 스타랜드, 국제금융 비즈니스 허브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인천공항과는 직선거리로 6km 남짓에 불과한 데다 8월에 개통하는 인천공항 자기부상열차 시범노선에도 포함됐다. 환승객이나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이미 10년간 자금난 등으로 파행을 겪은 데다 당분간 사업 난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3년 인천시는 이미 용유도와 무의도를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고 2007년에는 에잇시티 대주주인 독일계 호텔체인 켐핀스키와 개발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개발에 관한 마스터플랜을 세 차례나 변경했다. 에잇시티는 아직 자본금 500억 원을 마련하지 못했고 인천시는 5월 10일까지 ‘무조건 자본금을 마련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상태다.

그 사이 주민들의 삶은 뿌리부터 망가졌다. ‘초대형 개발’이라는 호재에 땅값이 뛰고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돼 재산권 행사가 제한되자 목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진 주민들은 은행 대출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신순식 용유·무의 주민대책위원회 상임자문위원장은 “용유·무의도 3000여 가구 중 60%가 땅을 담보로 금융권에 빚을 냈다”며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땅값이 떨어지자 대출이 주민들을 옭아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의 화려한 구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해외 자금을 끌어들이려던 계획은 불가능해졌다. 이 지역 공시지가는 이후 매년 5% 이상 하락했다. 금융권이 주민에게 해줬던 대출에 대해 일부 자금 회수에 나섰다.

2011년 첫 자살자가 나왔다. 주민 대부분이 대출을 받은 한 은행의 지점 직원이 자살했다. 처음 대규모 대출을 시행했을 때는 은행 본점의 표창까지 받았지만 연체가 시작되자 책임이 몽땅 돌아간 것이다. 한 주민은 “모두가 친인척 관계로 엮인 이곳에서 이 지역 출신인 은행원이 연체 독촉이나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중단 등 대형개발 악재가 계속되자 금융권의 대출 회수 압박이 다시 시작된 상태다. 용유동의 또 다른 주민은 “많게는 150억 원을 대출받은 사람도 있다”며 “올봄이 지나면 섬 전체가 경매 법정으로 넘어가는 것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주민들은 에잇시티에 3월 중 토지 수용을 시작할 것을 요구했지만 대답은 오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6월까지 토지 수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인천시에 경제자유구역 해제를 요청할 방침이다.

○ 작업 멈춘 ‘제2용산’이 전국 19곳…“대책 없는 게 문제”

이런 곳이 용유·무의도만이라면 심각성은 그나마 덜할 것이다. 24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1월 말까지 전국에서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공모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 28곳 중 19곳이 비슷한 위기에 처했다.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던 2000년대 초반 사업 계획을 세웠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지연되고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이 중단되는 과정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랜드마크빌딩 용지는 당초 DMC의 상징으로 세워질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흉물’로 전락했다. 세련된 전면유리의 오피스 건물이 용지 주위에 들어섰지만 입구에 해당하는 랜드마크 용지는 가림막이 둘러쳐진 채 텅 비어 있다. 3조6783억 원을 들여 133층 규모의 초고층 건물을 세우는 이 사업은 시행사가 토지대금을 내지 못했다.

충남 천안시가 발주한 천안국제비즈비스파크(사업 규모 4조6000억 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파주운정 복합개발단지(2조6431억 원) 등 공사가 중단된 PF사업 중 사업비가 조(兆) 단위를 넘는 곳만 9곳이나 된다.

만약 사업이 중단된 총 19곳 사업비 63조 원을 예정대로 투자한다면 총 86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겼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특히 후방 연관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면 늘어나는 일자리 수가 이보다 증가할 수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며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이 사상 최저치인 13.01%까지 떨어졌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건설투자 비중이 계속 줄어 경제성장률 둔화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정부가 과잉 개발된 부동산 실태를 조사해 정리해야 하는 부실사업은 정리하고 지원이 필요한 사업은 지원하는 등 부동산 PF에 대한 선별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대형 부동산사업은 좌초될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정부가 외자유치 등 자금 조달 방안과 공영개발 등 정상화 해법을 검토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 전반의 장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무의도=박재명 기자·장윤정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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