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의 지혜]4차 산업혁명시대 대중의 숨은 욕망을 찾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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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신문에 연재된 ‘혈의 누’는 한국 근대 소설의 효시이자 ‘신소설(新小說)’이라는 장르를 창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적 가치와 별개로 혈의 누는 문학 교과서를 통해 친일파 이인직이 쓴 ‘친일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주인공 ‘옥련’을 일본군이 구해 문명의 길로 인도한다는 내용은 친일 소설로 분류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혈의 누는 당대 대중성을 갖춘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초판 발행 1년 만에 재판을 찍었으며 1920년대에는 혈의 누를 모방한 아류들이 줄줄이 출간됐다.

혈의 누가 당대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혈의 누가 등장한 1900년대는 조선이 제국 식민지로 전락한 ‘망국’의 시대였지만 출판 산업은 성장했다. 서구식 인쇄술과 한글이 널리 보급된 데다 지식인 계층 사이에 교육과 계몽 운동이 일어난 덕분이다. 또 커피와 전기 같은 서구식 문명이 유입되면서 낯선 것을 즐기고 배우려는 대중들의 욕망도 커졌다.

주인공 ‘옥련’의 캐릭터는 미지의 미래에 대한 대중의 불안과 기대 같은 근대적인 감수성을 파고들었다. 혈의 누는 청일전쟁 피란길에 부모와 헤어진 옥련이 일본과 미국을 떠돌며 유학생활을 한 후 같이 공부하던 청년과 약혼해 조국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하는 내용이다. 옥련은 누군가의 딸, 아내, 어머니라는 전통적인 여성의 미래를 깨뜨리고 배와 기차를 타고 해외 낯선 세계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근대화의 격변의 시대를 살던 독자들은 옥련에게 미지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투영시켰다.

오늘날 기업들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앞둔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혈의 누가 당대 시대의 불안과 희망을 담은 캐릭터 ‘옥련’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듯이 기업도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내면의 욕망이 무엇인지 근원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경림 서울대 박사·현 충북대 강사 plumkr@daum.net
#4차 산업혁명#dbr#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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