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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리포트]‘산업’으로 커진 아이돌그룹, 그 속에 숨어있는 경영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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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리포트]‘산업’으로 커진 아이돌그룹, 그 속에 숨어있는 경영 전략

동아일보입력 2010-04-24 03:00수정 2010-04-24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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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ol Biz
10대 대변자 벗어나 모든 세대 공감 마케팅
멤버 특성따라 역할 분담… 여러 시장 공략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빅뱅, 소녀시대, 2NE1, 2AM. 지면 디자인 서장원 기자
“우린 H.O.T.를 마신다.”

1998년 5인조 아이돌 그룹 ‘H.O.T.’의 멤버 강타가 음료수 ‘틱톡 H.O.T.’를 들고 외쳤다. 핑클은 ‘핑클빵’을 홍보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문구점 사진, 책받침에 머물렀던 하이틴스타 캐릭터 산업은 식음료 산업과 접목됐다.

2010년 삼성전자는 10, 20대 신세대를 겨냥한 휴대전화 ‘코비’를 내놓으며 4인조 걸그룹 ‘2NE1’과 6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2PM’을 메인 모델로 내세웠다. 그동안 안성기, 이효리 등 세대를 통틀어 인지도가 높은 유명 스타를 휴대전화 광고모델로 내세웠던 삼성전자로선 파격적인 행보였다. 얼마 전에는 삼성 기업 광고에 ‘브라운아이드걸스’ ‘카라’ 등 걸그룹 멤버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LG전자는 89만 원짜리 프리미엄 휴대전화 ‘뉴초콜릿’폰에 9인조 걸그룹 ‘소녀시대’를 등장시켰다.

최근 한국에서 ‘뜨는 사업’ 중 하나는 아이돌 비즈니스다. ‘아이돌 그룹=기업’ ‘아이돌 멤버=제품’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아이돌 비즈니스가 산업의 영역으로 깊숙이 침투하면서 그동안 침체기를 겪던 대중음악 산업도 활력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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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활동 중인 아이돌 그룹은 약 30개팀. 이들 덕분에 한국의 대중음악 산업 규모는 2008년 약 2조1355억 원으로 2007년보다 12.9% 늘었다. 성장의 배경에는 이른바 ‘MP3 세대’라 불리는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디지털 음원산업이 있다. 이렇듯 국내 아이돌 비즈니스가 대중음악 산업에서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것은 기획사들의 치열한 경영전략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1990년대 아이돌 그룹은 ‘10대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획일화 교육 거부, 왕자님과의 사랑 등 또래들의 눈높이에 맞춘 노래를 불렀다. 광고모델 섭외도 또래들이 좋아할 치킨, 교복에 한정됐다.

반면 지금의 아이돌 그룹은 전 세대가 공감할 만한 쉬운 노래를 부르며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이들이 만든 ‘후크송’은 핵심 부분을 반복해 모든 사람이 흥얼거리게 하는 전략을 띤다. 30대 이상의 성인도 ‘소녀시대’의 ‘Gee’나 ‘원더걸스’의 ‘텔 미’ 등의 음원을 내려받았다.

그러다 보니 활동 영역도 점점 확대됐다. 5인조 그룹 ‘빅뱅’의 멤버 대성은 ‘날 봐 귀순’ 같은 트로트곡으로 솔로활동을 한다. 발라드 그룹 ‘2AM’의 멤버 조권은 ‘세바퀴’ 같은 성인 취향의 예능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출연해 인지도를 높였다. 소녀시대는 데뷔 초 멤버 윤아가 30대 이상 주부들이 즐겨 보는 KBS1 일일연속극 ‘너는 내 운명’에 주연급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소녀시대는 신한카드(금융), 유경테크놀로지(노트북), 닌텐도(휴대용 게임기) 등 소비자가 여러 세대에 걸쳐 있는 다양한 제품군 광고에 얼굴을 내밀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훈 수석연구원은 “40대와 50대가 소녀시대와 같은 걸그룹 멤버들의 얼굴을 알아보는 건 10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이는 아이돌 그룹이 10대만의 세상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새로운 시장을 공략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아이돌 브랜드 전략 구사… 신곡 낼 때마다 이미지 변신

올해 1월 ‘외톨이야’로 데뷔한 4인조 아이돌 록밴드 ‘씨앤블루(CNBLUE)’는 한 달도 안 돼 각종 음악 사이트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이 데뷔 초부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팀 내 보컬을 맡고 있는 멤버 정용화의 인지도 때문이다. 그는 데뷔 전 같은 소속사 선배 그룹 ‘FT아일랜드’의 멤버 이홍기와 함께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 출연했다. 소속사는 정용화를 일종의 시제품 형식으로 시장에 먼저 선보인 셈이다.

아이돌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가수를 꿈꾸는 청소년이 늘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돌 생태계’가 생겨났고, 연예기획사들은 인터넷에서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10대의 동영상을 보며 후보를 거르는 작업을 한다. 길거리 캐스팅은 이제 옛말이다. 후보군의 층이 두꺼워진 것이다. 후보군은 또 강도 높은 교육 과정을 거친다.

데뷔 전 노래, 춤 연습은 기본이고 해외 진출을 위한 외국어 공부, ‘몸짱’이 되기 위한 몸매 가꾸기 등 훈련내용은 단계별로 체계화됐다. 연예계에서는 이를 ‘커리큘럼’이라고 부를 정도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소속 스타가 돈을 벌어오면 기획사 자체 규모를 키우는 데 많이 투자했지만 지금은 전체 수입의 4분의 1을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한다”고 말했다. R&D 비용은 데뷔 전 연습생들에게 투자하는 비용을 뜻한다.

이렇게 ‘준비된’ 연습생이 많아지다 보니 기획사들은 멤버들을 미리 시장에서 테스트해본 뒤 본격적으로 데뷔시킨다. ‘티아라’를 키운 엠넷미디어 이한우 팀장은 “데뷔 때 누가 먼저 인지도를 갖고 출발하느냐에 그룹 전체의 성패가 달렸다”며 “기획사들은 어떻게든 이슈를 던져 신인 그룹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시장을 세분화한 뒤 각각의 시장을 공략하는 마케팅 전략도 눈에 띈다. 이 수석연구원은 소녀시대가 이러한 방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멤버 9명은 모두 기본적인 외모와 조건을 갖췄고 독특한 개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캐릭터가 겹치지 않으면서도 대중 대다수가 좋아한다는 것. 기업으로 치면 다양한 제품 라인업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분석이다.

13인조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는 활동영역으로 시장을 세분화한 경우다. 이들은 5년간 단 3장의 정규앨범밖에 내지 않았지만 멤버들의 활동은 드라마(희철), 뮤지컬(기범), 영화(시원), MC 및 예능프로 출연(이특 은혁 신동) 등 다양하다.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신상품 출시를 방불케 한다. 최근 소녀시대가 ‘치어리더’를 주제로 신곡 ‘Oh!’를 발표하자마자 ‘블랙 소시’(검은색 소녀시대라는 뜻)라며 어두운 콘셉트의 신곡 ‘런 데빌 런’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 한 브랜드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와 콘셉트로 대중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겠다는 의도다.

서울대 경영대 김상훈 교수는 “기획사들은 점점 아이돌 그룹의 인원수를 늘리며 다양한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시장을 세분화하고 여러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등 ‘스마트’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아이돌 마케팅 전문가 정욱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노래-춤-몸매 단련… 기획사도 대기업처럼 R&D 투자”

1998년 ‘god’부터 ‘량현량하’ ‘노을’, 그리고 지금의 ‘원더걸스’ ‘2AM’ ‘2PM’까지, 이들 그룹을 스타로 만드는 데는 가수 겸 프로듀서인 박진영의 음악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들을 완벽한 ‘상품’으로 만들어 냈던 마케팅 전문가로 JYP엔터테인먼트 정욱 대표(사진)가 있었다. 아이돌 산업이 갈수록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그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 대표는 “이제는 육성 과정 자체가 ‘코스’처럼 짜여 있어 하나의 코스를 통과해야 다음 코스로 넘어가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가창력 춤 외국어 몸만들기 등 각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데뷔를 할 수 없게 됐다. 이 때문에 기획사도 대기업처럼 ‘연구개발(R&D) 투자’가 많이 늘었다.

아이돌 그룹들은 최근 웹, 통신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과 교감을 하려 한다. JYP엔터테인먼트의 경우 2002년 4인조 남성그룹 ‘노을’을 SK텔레콤 휴대전화 속 동영상으로 데뷔시켰고 2007년에는 ‘원더걸스’의 ‘텔 미’를 내놓은 뒤 수많은 사람이 ‘텔 미’ 춤을 출 수 있도록 인터넷 동영상 손수제작물(UCC)에서 집중 마케팅을 펼쳤다. 정 대표는 “멤버 각각의 콘셉트는 소비자가 알아서 정하게 했다”고 말했다. 똑똑해진 소비자들이 스스로 상품을 정하고 이를 이용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과거엔 ‘티저 마케팅’ 같은 상품 전략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고객서비스(CS) 교육 등으로 넓어졌다.

그러나 아이돌 산업의 장기 성장 가능성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아이돌 생태계는 커졌지만 솔로 실력파 가수들이 천대를 받다 보니 음악 자체로 평가 받는 실력파 가수들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 이러다간 기초가 부실해져 산업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아이돌 왕국’이라 불리는 일본도 1970, 80년대 아이돌 스타들이 장기간 득세했지만 1990년 이후 ‘아이돌’에 대한 반작용으로 록 밴드, 싱어송라이터 등이 각광을 받았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이제 아이돌-비(非)아이돌 식의 이분법적 경계가 허물어질 정도로 아이돌의 실력은 점점 나아지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이미지도 ‘선망의 대상’이 아닌 ‘친근한 존재’로 대중에게 스스로 몸을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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