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자동차 과소비국 미국, 절약 모드로 바뀐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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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와 맞물려 미국의 위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얼마 전 출간된 한 책에선 미국의 일부 주에서 예산 부족으로 아스팔트길을 자갈길로 바꾸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허물어지고 있는 미국을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의 도로 포장 상태는 열악하다. 어떤 국가의 경제력을 보는 잣대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보통 국내총생산(GDP) 등 숫자로 나타난 지표들을 참고한다. 그런데 기자는 ‘자동차쟁이’라서 그런지 도로의 설계나 포장상태를 보고 경제력을 가늠할 때도 있다. 도로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고, 그만큼 세금이 걷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인 미국은 어떨까.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해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길은 민망할 정도로 곳곳이 파여 있어 운전이 조심스러웠고, 세계 경제의 중심지로 불리는 맨해튼 도심은 더 심했다. 미국 각 주정부의 재정상태에 따라 해당 주의 포장상태가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미국의 도로 포장과 도로 관리 시스템은 미국의 명성에 걸맞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도로의 총길이가 650만 km로 세계 1위이며 한국 10만5000km의 61배에 이른다. 미국 국민 1인당 도로 연장은 22m로 한국 2.1m의 10배다. 양국의 GDP나 1인당 GDP를 감안했을 때 사실 미국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도로가 많은 셈이어서 도로 포장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지만 현지인들의 얘기로는 최근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도로가 많은 것은 무엇보다 국토가 넓기 때문이겠지만 생활방식의 차이 때문인 이유도 크다. 3억1000만 명에 이르는 인구가 미국 전역에 고르게 퍼져 살면서 대부분 단독주택에서 생활한다. 아파트 같은 밀집 주거형태보다 효율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지고 쾌적하긴 하지만 도로 전기 인터넷 등 공공시스템을 설치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한국처럼 집단거주 생활을 하는 사회보다 몇 배가 든다.

출퇴근이나 배달 등을 위해 이동해야 하는 물류 거리도 자연히 크게 늘어나서 자동차와 연료의 소비도 엄청나다. 쓰레기 분리수거도 거의 없다. 값싼 상품이 넘쳐나서 아끼며 사용한다는 개념도 희박한 편이다. 최근 2, 3년간 2배 정도 올랐다는 휘발유 가격도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모든 것이 싸고 대량으로 공급돼 미국인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유지해왔다. 이렇게 소비를 해대는 미국 덕분에 한국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등 많은 상품을 수출할 수 있었고 배고픔을 벗어나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미국인들의 이런 비효율적인 생활방식과 소비행태가 지속 가능해 보이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효율적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외부 변수에 약한 한국 기업들은 과연 미국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비를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회의 전체적인 변화를 통찰하는 학자적인 시각이 없이 장사꾼의 관점에서 단순히 해당 분야나 시장의 변화만 들여다보는 기업은 당장은 잘나가는 것 같아도 10년 뒤에는 미국에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미국 노스헤이븐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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