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 하지만 美 반응은…[김정안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9일 14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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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늦가을쯤으로 기억됩니다.

북미 관계 전반에 대한 전화 인터뷰 중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지금도 사석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 무용론을 이야기 한다 행정부 관계자들이 말하더라”고 전하더군요. 놀란 척 되묻긴 했지만 내심 가볍게 흘려들었습니다. 현실성이 낮은 ‘카더라’식 워싱턴 정가의 가십 정도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우려는 설익은 가십이 아닌 현실적 시나리오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방위비 분담을 두고 한미간 진통이 계속되자 양국이 접점을 찾아도 주한미군 감축이 현실화 될 것이란 우려가 워싱턴에선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 “It is all crazy”

지난 주 오랜만에 한 의회 소식통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경직된 표정으로 카페 테이블에 마주 앉자마자 그가 던진 질문과 대화 일부.

의회 소식통: “한국에서는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수 가능성을 얼마나 진지하게 보고 있습니까?”

기자: “우려는 제기되고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 보는 목소리도 상당합니다.”

의회 소식통 : “왜 현실성이 없다 생각하죠? 지금 상황이 crazy하게 돌아가는 걸 알고 있나요?”

의회 정보위, 외교위 인사들과 연쇄 접촉했다는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히 진지하게 주한 미군 감축 또는 철수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구체적인 정황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정보위 외교위 관계자들의 말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평택 미군기지에 대기 중인 아파치 헬기.
평택 미군기지에 대기 중인 아파치 헬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부와 백악관 NSC에서 근무한 톰 맬라노스키(민주당 뉴저지주) 하원의원이 주한미군 감축 및 철수를 막는 결의안을 곧 제출할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맬라노스키 의원은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나토(NATO) 철수 및 감축에 반하는 결의안을 지난 22일 제출한 인물. 워싱턴에서 30여 년간 정치 컨설팅 펌을 운영해온 존 제임슨 ‘위닝커넥션’ 회장은 그러나 ”결의안은 일종의 정치적 의사 표현(political statement)일 뿐, 대통령이 추진하는 군 감축이나 철수 정책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주한 미군 감축을 막는 제동장치가 있지만 이 또한 유명무실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지난 해 미 상하원을 통과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을 한 ‘국방수권법(NDAA)’이 주한미군 최소 주둔 규모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 효력은 올 9월 끝나는데다 군통수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헌법이 보장한 군 지휘권을 내세워 얼마든지 감축을 강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 “‘그들을 집으로’ 내세워 감축 가능성도”

이 모든 움직임은 내년 대선과 연결 돼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을 한반도 평화 안착의 증거물이자 선거용 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공화당 소식통인 션 킹 파크스트래티지스 부소장은 주한 미군 감축에 대해 “if(가부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when(언제)의 문제로 보고 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국내외적 강한 반발에도 지난 해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철수를 강행하는 모습에서 더욱 확신을 얻었다고도 했습니다.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수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동아시아 내 미국의 영향력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는 문제’라는 기자의 반론에 돌아온 답 또한 단호했습니다.

“누구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과 악수하며 정상회담을 하고, 이를 계기로 한미 연합 훈련이 축소, 중단 될 거라 예상 못했지만 현실화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서 ‘그들을 집으로(bring them home)’라는 구호를 앞세워 지지층에게 어필하려 할 수 있을 것이다. 주한 미군 감축은 한반도 평화 정착의 일환이라는 논리이고, 대다수 그의 지지층은 이를 지지하며 받아들일 것이다. 트럼프에게 주한 미군은 비용의 문제이지 전략적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열린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제 4차 회의.
지난해 6월 열린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 제 4차 회의.


●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해야

물론 미 행정부 내에는 여전히 관련 가능성을 낮게 보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화 협정이 체결될 경우 주한 미군이 필요 하냐’는 질문에 지난해 매티스 국방장관 마저 그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동맹국 북한 등과 함께 논의해 나가야할 문제”라고 말한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관련 논의가 구체적인 감축 규모 등으로까지 가시화되진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 수준의 20~30%, 시점은 내년 초까지도 가능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치도 벌써부터 나옵니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요즘, 주한 미군 감축은 더 이상 설익은 상상속의 시나리오만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하고 대응하는 것이 최적의 외교라면 우리 정부의 발걸음은 보다 더 바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김정안 동아일보·채널A 워싱턴 특파원 j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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