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날선 발언·무력 시위 ‘소심한 도발’ 그 속내는… [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2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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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 미국의 협상팀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에 참관했다는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나왔습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다시 재개된 비난과 무력시위라는 점에서 많은 외신이 주목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북한의 행보가 다시 과거 미국과의 대치 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호인지 궁금합니다.
-차지현 연세대 경제학과 14학번(아산서원 14기)

A. 질문하신 대로 2월 말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회담 결렬’이라는 홀대를 당한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개최 이후 날선 말과 군사도발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강도이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점입니다.

우선 날선 말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최근인 4월 20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해 “매력이 없이 들리고 멍청해 보인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앞서 17일 볼턴 보좌관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신호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데 대해 “두 수뇌분(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제3차 수뇌회담과 관련해 어떤 취지의 대화가 오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말을 해도 해야 할 것이었다”며 맞받아치고 나온 것입니다.

매력이 없고 멍청해 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볼턴 보좌관은 기분이 나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해야 할 실무책임자 격인 최선희와 볼턴 보좌관이기에, 이번 발언의 내용은 ‘너랑 이야기 안하고 싶다’는 뉘앙스로도 들립니다.

하지만 북한을 오래 연구하다보면 그들이 내뱉는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형식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형식으로 했는지에 따라 평양 내부의 기류를 다르게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평양에서 외신 기자와 외교관들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 평양=AP 뉴시스
지난달 평양에서 외신 기자와 외교관들을 상대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 평양=AP 뉴시스


결론적으로 이번 발언은 북한 측도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 흔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선희라는 중요한 인물의 발언이지만 그 형식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자들의 발언은 다양한 형식으로 외부에 공개되는데,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다지 비중이 높지 않은 부류입니다. 우선 주체가 최선희가 아니고 기자입니다. 나중에 미국 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기자가 물어보니 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기자가 잘못 보도했다.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입니다. 만약 최선희 부상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직접 발언했다면 더 강한 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위에는 외무성 성명, 공화국 성명 등이 있겠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이전의 발언들을 살펴봅시다. 미국의 또 다른 회담 실무 책임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대해 “폼페이오가 회담에 또 관여하면 판이 지저분해지고 일이 꼬일 수 있다”고 한 18일 발언 역시 이름마저 생소한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한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강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실세중의 실세로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에 올라선 최선희가 아니라 권정동 국장이 발언한 것에 대해 ‘나를 볼턴보다 낮게 보는 것이냐’며 항의해야 할 판입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날선 말의 공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청중인 것으로 보이고, 하고 싶은 말은 ‘측근들의 말을 듣지 말고 우리 위원장과 잘 좀 대화해 보라’는 취지로 들립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도 상대방에 대한 공격은 하지 않고 ‘좋은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과 마음대로 하고 싶은데 옆에서 말리는 볼턴과 폼페이오가 불만이고 그래서 이 둘을 향해 ‘소극적인 빈정거림’을 퍼붓고 있는 셈입니다. 즉, ‘너랑 말 안 해’가 아니라 ‘말 좀 잘해보고 싶으니 선수 바꿔’ 정도의 뉘앙스가 깔린 것입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6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017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의 비행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6일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1017군부대 전투비행사들의 비행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뉴시스


북한의 무력도발도 마찬가지입니다. 20일(현지 시간) 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잘 지적한대로, 북한의 최근 군사움직임은 북미대화의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불만을 표시하는 수준입니다. 김 위원장이 16일 평남 순천 군부대를 시찰하고 17일 신형 전술 유도무기 사격 실험을 참관한 것을 ‘수동적 공격성’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하노이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이 태양절(4월 15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전후해 인공위성을 가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할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을 그 길을 현재까지는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감행할 경우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금지한 유엔 제재를 위반하게 되도 유엔은 2013년 1월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안 2087호에 넣은 자동개입 조항(트리거)에 따라 또 다른 대북제재 결의안을 내놓게 됩니다.

이에 따라 탄도미사일이 아닌 신형 전술 유도 무기(한국 정부는 전차나 장갑차 같은 지상표지 파괴용 유도무기로 추정)를 시험발사 하는 선에서 ‘소심한 형식으로’ 하노이에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당한 수모에 대한 불만 표시를 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패트릭 섀너헌 미 국방장관 대행도 18일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탄도미사일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것을 보면 미국도 북한의 속마음을 잘 읽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전문가들의 관심은 멀리 내년으로 가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 볼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대화의 판을 깰 만한 극한 말이나 무력도발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말이 온다고 해도 미국은 핵과 미사일,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전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강대국적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 같고 이 점을 김정은도 모를 리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의 평행선이 계속되거나, 아니면 상황이 악화된 채 내년을 맞게 될 때, 김정은이 또 어떤 국면전환을 꾀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석호 디지털뉴스팀장(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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