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옆 사진관]싱가포르…독재자들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2일 14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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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를 방문중인 문 대통령이 12일 리센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싱가포르=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싱가포르를 방문중인 문 대통령이 12일 리센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싱가포르=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방문해 리센룽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출장으로 여러차례 들렀던 곳입니다. 가장 최근 출장은 고 리콴유 총리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국부로 추앙받는 리 총리의 죽음을 슬퍼하는 싱가포르 국민들의 표정을 촬영하려 했지만 정작 길거리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기자실이 있던 호텔 앞 큰 도로가 완전히 통제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치안이 센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호텔 뒤 골목을 제외하곤 아예 움직이지 못 하게 하니 할 수 있는 것은 기자실에 있던 벽걸이 TV의 장례식 중계화면을 캡쳐하는 일 뿐이었죠. 화가 난 다른 기자는 뒷골목에 나가 몰래 껌과 침을 뱉곤 들어와서 “에잇, 300만원 벌었다”고 푸념했습니다. 침을 뱉으면 벌금이 300달러 쯤 됐으니 10번쯤 뱉었나 봅니다.

“싱가포르가 듣던 바대로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건물마다 특색이 있다. 앞으로 여러 분야에서 귀국(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 전 깜짝 밤나들이를 나섰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단순히 외교적인 수사가 아니라, 김 위원장의 속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혁 개방 모델을 따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상하이 주식시장을 시찰했을 때에는 북한이 중국식 모델을 따를 것이라고들 했죠. 또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베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에게 베트남을 롤모델로 제시해 화제가 됐습니다.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이런 발언 등이 미국이 북한에 대해 깊이 학습하지 않은 방증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합니다. 저도 주기자의 시각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 7월11일자 주성하 기자 칼럼 - 베트남은 북한의 롤모델이 아니다

싱가포르 하면 자유무역, 부유한 선진국, 깨끗한 거리, 청렴한 엘리트 공무원 등을 먼저 연상하는데요, 이면에는 독재국가라는 그림자가 짙게 있습니다. ‘창업자’인 리콴유 전 총리 일가가 ‘오너’인 나라죠. 세습이요? 물론입니다. 리 전 총리가 타계한 이후 장남인 리센룽이 사실상 종신인 총리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리 총리는 32세 때부터 국무장관에 오르는 등 정부요직을 두루 거치며 일찌감치 후계자 학습을 했죠. 선거도 있고 의회도 있지만 하나마나, 있으나마나. 독재자라면 혹하지 않을까요. 김 위원장에게도 싱가포르 체제는 엄청난 매력으로 보일만 합니다.

싱가포르에선 경제도 정부가 주도권을 가집니다. 정부가 직접 경제영역을 일일이 관리하고 통제하죠. 싱가포르 최대 기업인 국영투자회사 ‘테마섹’의 CEO는 리 총리의 부인 호칭 여사입니다. 독점권을 가진 주요 국가기업들 수장을 죄다 리 총리 일가와 친인척이 맡고 있는 구조지요.

언론 자유도 없습니다. 신문매체는 10개가량 있지만 전부 한 회사입니다. 방송채널도 6개인데 사실상 한 회사가 관리합니다. 당연히 지배회사의 수장도 리 총리 일가이고요. SNS도 소용없습니다. 몇 해 전 한 싱가포르 고등학생이 용감하게도(?) 유튜브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없다”고 항변하는 동영상을 올렸다가 얼굴을 알아본 행인에게 구타를 당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치안이 뛰어난 싱가포르지만 경찰은 모른 척 했다고 합니다. 국가보안법도 살벌하고 반정부 집회 금지, 흡연 금지, 밤10시 이후 야외 음주 금지, 침만 뱉어도 벌금 수백달러… 사복경찰이 대화내용까지 엿듣는다고 하니 말 다했죠. 민간인 사찰도 잦을 것입니다(우리나라에도 얼마 전까지 있었죠).

어쨋든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5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을 이뤘습니다(국민들이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는지는 모릅니다). 민주주의를 포기한 대신, 청렴한 엘리트 공무원들이 깨끗하고 촘촘하게 국가를 경영해 훌륭한 성과를 냈으니 이를 ‘효율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김 위원장은 북한을 ‘가난한 나라’라고 지칭했다고 하죠. 권력은 대물림해왔는데 아뿔싸, 가난까지 대물림했다는 하소연일까요. 반대로 부를 대물림할 수 있다면요? 북한의 경제발전이 본인의 자산형성과 직결 된다면요?

일단 본인이 직접 주도해 토목, 건설, 통신, 철도, 발전, 제철, 정유, 광산 등 기간산업 분야부터 정부투자기업을 세우고 독점권을 주면 엄청난 기업으로 성장하겠죠. 그 뒤 싱가포르처럼 각 주요기업 실권수장으로 친인척을 대거 앉히는 겁니다. 북한 경제의 절반 이상을 김씨 일가가 장악하는 상황도 가능합니다.

대개 독재자들은 정치권력만 갖고 경제권은 시장에 넘긴 상태에서 통제하고 장악하려합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아예 경제권까지 완벽하게 통째로 소유하는 셈입니다. 한반도 북쪽의 완벽한 주인이 되는 거죠. 할아버지가 창업했으나 진즉에 부도난 가업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3세 오너로서, 모든 것을 소유하는 절대주인이 되는 꿈. 자신과 친인척이 곧 정부이자 기업이 되고, 국가가 곧 자신이 되는 나라. 인민은 생계를 보장해 주는 대신 철저히 통제하되, 자신과 일가는 세습은 물론 완전한 부와 자유를 누리는 나라. 그러면서도 싱가포르만큼 야경이 멋진 폼 나는 나라.

이상 어설픈 사진기자의 헛된 상상이었습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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