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전문기자의 워게임]사드 자중지란, 차기 대통령이 끝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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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대선 후보들은 TV토론 등에서 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013년 괌의 사드 포대에서 빈센트 브룩스 미 태평양 육군사령관(현 주한미군 사령관)이 훈시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주요 대선 후보들은 TV토론 등에서 사드 한반도 배치에 대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2013년 괌의 사드 포대에서 빈센트 브룩스 미 태평양 육군사령관(현 주한미군 사령관)이 훈시하는 모습. 동아일보DB
윤상호 전문기자
윤상호 전문기자
2003년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으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신 듯 들끓었다. 파병 찬반을 놓고 ‘친미 대 반미’ ‘보수 대 진보’로 국론은 사분오열됐다.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연일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반미 구호를 외치며 파병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파병 불가를 주장하면서 정부를 압박했다. 인터넷 공간에는 ‘한국군이 미국 용병이냐’ ‘파병은 매국 행위’라는 비난성 글이 폭주했다.

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파병 요구를 수용하면 ‘반미면 어떠냐’로 상징되는 노무현 정부의 대미 자주외교에 치명타가 될 게 뻔했다. 지지층 반발과 이탈로 향후 정국 운영에 ‘부메랑’이 될 것이라며 쌍수를 들어 반대하는 청와대 보좌진들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파병 강행을 결정했다. “(노 대통령에게) 파병 문제를 정치 논리로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강력히 건의했다….” 당시 군 고위직으로 파병 결정에 참여한 인사가 기자에게 전한 얘기다. 이념과 정치적 득실을 초월해 안보와 국익을 고려한 결단이었다는 의미였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찬반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이 눈앞에 겹쳐졌다. 사드 문제의 본질은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다. 유사시 북한의 핵 공격으로부터 주한미군과 대한민국의 방어라는 국가 안보와 국민 생존 차원에서 철두철미하게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 정파적 이해와 이념 편향적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등 안보 외적 요소는 냉철하게 배제해야 한다.

그러나 사드 공방은 처음부터 본말이 전도됐다. 지난해 사드 배치가 결정되자 온갖 유언비어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됐다.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가 암과 백혈병을 유발하고, 농작물을 오염시킨다는 ‘괴담’까지 나돌았다. 진보 성향의 정치인과 언론들은 이를 사실인 양 퍼 나르며 사드 반대 운동을 부추겼다. 북한의 핵보다 사드 전자파를 걱정하는 ‘촌극’은 괌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가 인체에 해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사드를 둘러싼 이념과 정파적 대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사드 찬반에 따라 이념과 정치적 피아를 편 가르는 소모적 논쟁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일부 대선 주자가 북한의 핵 위협에 눈을 감고서 사드 반대를 고집하는 것도 지지 세력을 의식한 정략적 셈법으로 읽힌다.

어디 그뿐인가. 유튜브에는 자칭 전문가와 폴리테이너(정치활동 연예인)들이 어설픈 지식과 논리로 ‘사드 무용론’을 주장하는 동영상이 넘쳐난다. 사드 1개 포대로는 서울 등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는데도 정부가 미국의 배치 압력에 굴복해 중국의 보복을 자초하고, 한반도 평화를 해친다는 내용이 주류다. 북한의 핵 공격이 초래할 절멸적 참화와 사드 배치 이외의 안보 군사적 대안에 대한 언급은 쏙 빠져 있다.

‘사드 자중지란(自中之亂)’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의 김정은이다. 순수한 방어무기의 배치조차 이념과 정치 공방으로 갈팡질팡하는 대한민국의 안보 현주소를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볼 것이다. 유사시 ‘핵 비수’를 들이대도 한국과 미국이 별수 있겠느냐는 확신을 갖게 됐을지도 모른다.

중국도 ‘반사이익’을 톡톡히 봤다. 사드 반대를 행동으로 보여준 한국 국회의원들의 ‘조공(朝貢) 외교’와 중국의 사드 보복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한국 내 반미 기류가 그 증거다. 중국이 대한(對韓) 사드 보복 수위를 높이는 것도 한미동맹의 틈을 벌려 놓겠다는 속셈이다.

사드를 둘러싼 국론 분열과 사회 갈등은 안보와 국익에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핵 위협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방도를 강구하는 데 이념과 정치적 이해를 앞세우는 것은 ‘자해행위’와 같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사드 갈등 봉합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유력 대선 후보들이 북한 핵 위협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사드 배치에 긍정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느 당의 누가 대통령(군 통수권자)에 당선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책무다. 국방과 안보를 이념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정치인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다음 달 9일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이런 메시지를 기대해본다. “사드 공방은 이제 멈춥시다. 북한의 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원동력은 국민의 결집된 힘과 철통같은 안보 의식입니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사드 자중지란#사드#북한 김정은#국가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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