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공수처-선거법 거래…‘좌파 영구집권’ 위한 조국의 승리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6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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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국회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회의원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5일 국회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회의원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또 국회 난투극이다. 이 꼴 안 보려 이름도 역설적인 국회 선진화법 만들지 않았냐고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면 쉽다.

그러기 전에, 왜 청와대와 여권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에 기를 쓰는 건지 따져봤으면 한다. 대통령 측근 같은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잡기 위해서라고? 아니라고 본다. 그건 특검으로도 충분하다(청와대 의지만 있으면). 박근혜와 최순실도 특검이 잡아냈다.

말 안 듣는 검찰 기소를 위한 공수처 설치

공수처가 필살기(必殺技)인 이유는 검찰을 확실히 잡을 수 있어서다. 22일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4당의 공수처 합의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검사에 대해 기소권을 갖게 돼 있다.

쉽게 말해 정권의 말을 안 듣는 검찰은 공수처를 통해 기소하겠다는 의미다. 물론 공수처엔 판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한 기소권도 부여됐지만 이건 물타기라고 본다.

여기서 잠깐, 왜 검찰개혁이 필요했나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나 같은 민간인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막강 검찰이 대통령이나 측근 실세의 부정부패에 눈 감기 때문에 개혁을 해야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정치 검찰’을 정치권력에서 독립시키는 게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도 검찰의 막강 권력을 통감한다. 그래서 검찰권력을 분산해야 한다며 검경 수사권 분리와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이를 검찰권력의 ‘민주적 통제’라고 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선출된 권력(집권세력)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을 따라야 한다”는 盧와 文

안 믿기는가. 노 대통령이 임명한 첫 검찰총장이었던 송광수는 2009년 신동아 9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양반이 임명장을 주시고 나서‘어제 청문회하는 걸 보니 총장님이 뭐 내 생각하고 다른 말도 많이 합디다’이러더라. 국가보안법과 한총련 문제를 마음에 두신 것 같던데 가만히 있었더니‘검찰총장이 높다 해도 대통령 밑에 있다.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따라야 한다’딱 이러시는 거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송광수 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송광수 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송광수는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뒤 김각영 검찰총장이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새정부의 의사가 확인됐다”며 사퇴한 후임으로 임명됐다. 노무현 대선 자금 수사로 대통령 측근 최도술 총무비서관을 구속 수사하는 등 청와대 권력과의 거리를 지킨 검찰총장이었고, 당시 민정수석이 문재인 현 대통령이다.

충성하지 않는 검찰권, 어떻게 잡을 것인가

현 정부는 그러나 검찰 인사권을 장악하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고 여긴 듯하다.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는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찰에서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거스르는 검사가 나타났다고 하자. 파헤쳐보니 그가 ‘스폰서 검사’임이 드러나도 제 식구 감싸기에 호가 난 검찰이 기소를 안 해버리면 청와대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공수처라는 거다.

문 대통령이 쓴 ‘검찰을 생각한다’에는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제도적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라는 노무현의 회고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수사를 검찰 권한 남용의 대표사례로 봤다. 이 같은 검찰권력 남용을 감시, 견제, 분산하기 위해선 공수처가 필수라는 논리다.

벌써부터 검찰은 설설 기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공수처 기소대상 합의안에 대통령 친인척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이 빠져 있다며 대통령이 대통령 주변 견제 기구로서의 공수처가 안 된다는 데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나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부르고 싶다.

대통령 주변 견제는 지금도 검찰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25일 검찰이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만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재판에 넘기고 임종석 전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 4명은 전부 무혐의로 처분한 걸 보면 모르는가. 다만 안 하고, 못할 뿐이다.

공수처는 정치적으로 독야청청할 것이라고? 공수처 법안 분석 결과 ‘공수처 검사 인사위원회’의 과반을 친여인사로 채울 수 있다(특검이 측근비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인사의 독립성 덕분이었다). 이런 공수처를 설치한 뒤 만에 하나, 어떤 물정모르는 검사가 대통령 측근 비리 잡겠다고 날뛴다면 누군가 조용히 말릴지 모른다. 너 공수처 잡혀가서 기소당하고 싶니?

“비례대표제는 좌파집권에 유리한 제도”

이런 공수처를 놓고 자유한국당을 뺀 야당은 왜 합의해준 걸까. 공수처의 무서운 의미를 몰라서라면 차라리 낫겠다. 그들은 꼬마정당의 의석수나 자신의 정치생명을 늘리기 위해 선거법 개정을 나라의 운명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개·돼지여서 연동형 비례제의 복잡한 계산법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정의당을 교섭단체로 만들고, 꼬마야당들 의석 늘려주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공수처-선거법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내년 총선 직전 통과되면 정의당과 민주당이 연대해 좌파정권 재창출의 기반을 굳히는 건 기본이다.

작년 11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 보도는 이렇게 전했다. “정치경제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인 아이버슨과 소스키스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주요 17개국 민주주의 국가의 전후 50여 년 동안 다수대표제 하에서는 우파 쪽의 집권기간이 75%,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좌파 쪽의 집권 기간이 74%였다.”




이러려고 100년 평화집권 자신했나

앞으로 남북연합이나 코리아연방을 주장하는 다양한 친북정당이 확대되고 환경, 동성애 등 좌파적 이슈를 내건 미니정당이 튀어나오면 좌파연대 영구집권도 가능해진다. 숱한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문책은커녕 검찰개혁에 매진해온 조국 민정수석이 마침내 빛나는 개가를 올린 것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출입기자단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청와대출입기자단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올 초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그것을 기반으로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 재집권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는 100년을 전개할 것” 이라고 밝힌 건 농담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어디로 달려갈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미국의 포린어페어즈지(誌)가 언급했던 ‘사법부에 대한 신뢰’ 만은 기억하고 싶다. 신권위주의 독재자들은 총칼에 의지하는 대신 언론과 사법부 억압으로 독재를 강화한다. 그래도 그 나라 국민이 희망을 가질 곳은 검찰을 비롯한 사법부뿐이었다.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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