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최저임금 혼란에서 ‘각자도생’ 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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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美보다 4배 많은 한국, 최저임금 인상이 옳고 좋으니 힘들어도 따르라는 정책은 천사가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위성만 앞세우는 진보정치, 문제 터지면 우왕좌왕해서야 정부다운 정부라고 할 수 있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최저임금 관련 기사를 읽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를 다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떨어져 있어도 이런데, 직접 관련된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의 답답함과 어려움이 조금은 느껴졌다.

먼저 정부의 문제다.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면 유난히 많은 한국의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문제부터 깊이 고민했어야 했다. 자영업자는 고용인구의 26%로 미국의 6∼7%나 독일과 일본의 10∼11% 등과 크게 차이가 난다. 이들 나라 같으면 하나 있을 가게가 3, 4개 있다는 뜻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상황, 이들의 임금지불능력이 높을 수 없다.

왜 이렇게 많을까? 산업이 이들을 고용으로 흡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안전망과 평생교육체계라도 잘 갖춰져 있으면 실업상태에서 재취업을 위한 기술을 익히며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다른 나라의 이야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먹고살자면 되건 안 되건 뭐라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형편이다.

산업구조와 고용구조의 문제가 연결돼 있고, 실업안전망과 평생교육체계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높은 임대료와 공정거래 문제 등도 붙어 있다. 그만큼 최저임금 인상은 넓고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것 같지가 않다.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분석보다 당위가 앞섰다. 즉, 그냥 해야 될 일이니 한다는 식으로 시작했다가 문제가 심각해지자 허둥대고 있다. 뒤늦게 대책을 쏟아 놓는가 하면, 장차관 등이 설득하겠노라 현장을 찾아 법석을 떠는 게 그런 것 아니겠나.

설득과 대책의 내용도 그렇다.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그 하나는 좋은 일이고 해야 될 일이니 어렵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일면 사람보고 천사가 되어 달라는 말, 목사나 스님이 할 ‘말씀’이지 정부가 할 말은 아니다.

또 하나는 소상공인 등 임금부담이 커진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임대료 등 이들을 힘들게 하는 부분은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오래 지속할 수 없을뿐더러 시장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이 역시 그리 높은 수가 아니다.

야당 쪽도 한숨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를 비판하지만 막상 자신들은 저소득 근로자의 소득향상이나 내수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 역시 문제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우리 정치의 고질병, 즉 문제를 상대를 찌르는 무기로 삼을 뿐, 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다. “야당은 힘들어진 중소상인들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어느 신문에 소개된 중소상인 대표의 말이다. 이들도 알 것은 다 알고 있다.

한쪽, 즉 정부는 여기저기 당위성을 앞세운다. 진보정치의 특성이 그대로 옮겨졌다. 비정규직은 없어져야 하고 가상화폐 거래소는 폐쇄되어야 하고 어린이 영어교육은 막아야 한다.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은 그 뒤의 일이다. 옳은 일이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우왕좌왕한다. 한마디로 정부답지 못하다.

다른 한쪽, 즉 야당들은 대안 없이 비판한다. 늘 하는 이야기이지만 일반 관중은 공을 찰 능력이 없어도 선수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 선수는 다르다. 비판에 앞서 스스로 잘 차는 방법을 일러줄 수 있어야 한다. 정당도 프로고 정치인도 프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요?” 강연 끝에 청중 한 사람이 물었다. “각자도생, 스스로 살아남으세요.” 청중이 ‘와’ 하고 웃었다. 냉소가 섞였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각자 처해진 상황을 분석하고, 바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바꾸고, 그렇게 살아남아야 합니다. 각자도생의 이런 혁신이 모여 이 사회와 이 나라의 경쟁력이 됩니다.”

다소 무거워진 청중을 보며 말을 맺었다. “살아남았다 싶으면 한발 앞으로 나와 공동체를 생각하세요. 바로 옆 사람과 이웃의 손을 잡으세요. 그리고 더 잘 살게 되면 또 한발 앞으로 나와 나라 걱정을 하세요. 그러나 우선은 각자도생, 스스로 어떻게든 살아남으세요.”

유감이다. 어렵고 힘든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밖에 드릴 게 없다는 것이.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최저임금#산업구조#고용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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