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칼럼]‘친노’와 ‘친문’은 다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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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반대하는 친노黨? 그곳엔 盧조차 설 자리 없다
노무현은 시장-공동체 중시, 국가기능 키우려는 ‘친문’과는 국가운영 철학부터 달라
문재인을 둘러싼 친문세력… ‘노무현 계승’ 말하지 말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2008년 참여정부가 끝난 이후 한동안 괴로웠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서 정치권에 있는 주류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이나 이들이 주도하는 정당을 비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의 이유는 분명했다. 이들이 노 대통령의 주요 정책들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했고, 동북아 구상의 핵심인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사과했다. 그 외 서비스산업 육성 등 노 대통령의 고민이 담긴 많은 정책들도 부정했다.

그냥 부정하지도 않았다. 한미 FTA는 ‘친미’ 참모들에게 속아서, 또 미국에 금융위기가 오는 것을 몰라서 한 것이라 했다. 제주해군기지는 민원이 그렇게 거센 줄을 몰라서 했고, 서비스산업 육성 역시 재벌과 가까운 일부 참모들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라 했다.


참모에게 속아서? 금융위기가 오는 것을 몰라서? 노 대통령이 그런 지도자였단 말인가.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얼마나 긴 시간, 얼마나 깊은 고민을 했는가를 잘 아는 정책참모로서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들이 속한 당(黨)을 향해 이렇게까지 말하고 말았다. “저곳에는 노 대통령조차 설 자리가 없다.”

다행히 최근 마음이 다소 편해졌다. 두 가지 이유인데 먼저 그 하나는 이들이 본래 다른 정책적 성향을 가진 정치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적 관계에 있어서는 친노이지만, 국가 경영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알았다는 뜻이다. 이후 불편한 생각들이 사라졌다. ‘본래 다르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또 하나는 이들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외연을 확대해 왔고, 이제 ‘친문(친문재인)’이라는 독자적 이름을 가질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각이나 판단이 노 대통령의 그것으로 오해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이를 분리시켜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실제로 친문은 많은 부분에서 노 대통령과 다르다. 인권 평화 상생 균형 등 많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국가 운영과 관련된 기본철학과 행위패턴 등 매우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책 등으로 구체화될수록 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뜻이다.

우선 시장과 공동체에 대한 생각부터 다르다. 노 대통령은 개방과 시장압력을 통해 산업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시장의 기능을 중시했다. 또 공동체를 살려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고, 이를 위해 분권과 자율의 기반을 강화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이에 비해 친문은 한미 FTA 문제에서 보듯 시장 기능에 대해 소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분권과 자율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적극적인 의사표시나 입법행위가 부족하다. 그만큼 시장이나 공동체보다는 국가 부문에 더 의존하겠다는 뜻 아닐까?

국정운영 원리에 대해서도 큰 차이가 난다. 노 대통령은 법가(法家)의 입장이 강한 지도자였다. 제도와 시스템을 중시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대통령을 불행하게 만드는 제도적 환경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고, 이를 고민하는 사람이 적음을 통탄했다. 오죽하면 이를 연구한 학자를 발견하고는, 그를 초청해 수석보좌관들 앞에서 발표까지 하게 했겠나.

하지만 친문이나 문 전 대표는 다르다. 이번의 국정 농단 문제만 해도 제도가 아닌 사람의 문제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개헌의 필요성을 덜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 같으면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문제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에 더 주목했을 것이다.

행위패턴도 그렇다. 이를테면 노 대통령 같으면 정책자문 전문가들을 저렇게 많이 모았을까? 2002년 대선 당시 그는 정책자문 교수와 전문가의 수를 일부러 늘리지 말라 했다. 그들의 이름 또한 밝히려 애쓰지 않았다. 지지선언을 한 교수들이 많았지만 이들을 정책캠프에 영입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것도, 더 옳다는 것도 아니다. 정책자문 전문가의 문제만 해도 일부러 많이 모으는 쪽과 굳이 그러지 않은 쪽, 어느 쪽이 우리 정치와 사회에 더 기여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뜻이고,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진영논리나 패거리 정치에 함몰되어 엄연히 다른 것을 같다고 생각하지 말자는 뜻이다. 그래야 정책담론의 수준과 우리 정치의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친노#친문#문재인#한미 자유무역협정#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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