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의약품 개발환경 조성… 제2의 반도체로 키워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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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성장동력 제약산업
(2) 글로벌시장 공략위한 전략
“산업 파급효과 큰 효자… 신약 틈새시장 유망주로”

우리 경제의 차세대 성장동력 가운데 하나로 기대되는 제약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선두주자의 위치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제약시장은 ‘선진국형 산업’으로 불린다. 제약시장 발전에는 폭넓은 기초과학, 성숙한 의약산업, 숙련된 전문인력, 넓은 시장, 풍부한 자금 등이 핵심 요소다. 반도체 등의 첨단 기술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달리는 한국이 지금까지 글로벌 제약시장에서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은 제약산업 발전에 필요한 여건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500개가 넘은 제약기업들이 있지만 이 중 신약개발 능력을 가진 기업은 10% 미만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약개발은 사회적 인프라뿐만 아니라 기업의 인프라 그리고 투자역량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도전조차 힘든 분야다. 특히 신약개발의 마지막 단계인 3상 실험에 들어가는 비용은 수천억 원이 넘기에 기업으로선 명운을 걸어야 한다.

현재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의약품은 크게 화학합성의약품, 바이오의약품, 제네릭, 천연물의약품 등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바이오의약품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생명공학기술(BT)의 발전 및 타기술과의 융합에 힘입어 향후에는 정보디지털 경제를 거쳐 바이오경제시대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OECD 2006년 자료) 속에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1810억 달러였던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2020년 전체 의약품 시장 1조4000억 달러의 20%를 넘는 2910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8년 세계 의약품 100대 매출 품목 중 51개가 바이오의약품일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역시 2012년 39개에서 30% 신장된 것이다(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자료).

아직까지 바이오 분야에는 독보적인 글로벌 강자는 없다. 한국은 세계 최초의 줄기세포 치료제인 하티셀그램을 비롯한 3개의 신약,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어시밀러인 셀트리온제약의 렘시마 등을 개발해 미국에 수출하는 등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분야에서 강자로 부상 중이다.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는 2019년 239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15년부터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블록버스터 의약품들의 특허 만료가 시작돼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LG생명과학, 한화 케미칼 등 많은 회사들이 바이오 의약품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의 생산 현장이 모여 있는 인천 송도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설비 규모는 글로벌 TOP5 수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산업 미래 열 블루오션

천연물에 바탕을 둔 의약품인 천연물의약품은 신약시장의 틈새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신약시장을 휩쓸고 있는 바이오신약, 개량신약에 비해 천연물의약품 개발에는 활발히 참여하지 않고 있다.

성상현 서울대 약대 부학장은 “천연물 신약 개발은 종자관리에서부터 시작하므로 관련된 분야가 많고 식품산업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서 ‘천연물바이오산업’이라는 신산업의 미래를 열 중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천연물의약품 시장의 세계시장 규모는 2012년 기준 23조 원이며 이 중 가장 큰 시장은 중국으로 20조 원의 시장을 형성 중이다(서울대천연물신약사업단 자료). 중국에서 5대 천연물의약품은 2007∼2012년 평균 61.4%씩 성장했다. 그리고 유럽도 진출이 유망한 지역으로 꼽힌다.

천연물과 연관된 농생명산업 시장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세계 식품시장 규모(2015년 기준)는 6조1000억 달러로 1조3000억 원의 자동차 시장, 1조6000억 원의 정보기술(IT)보다 각각 4.9배, 3.8배 큰 시장이다. 2019년엔 7조3000억 원의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농촌진흥청 자료). 성 교수는 “전에 비해 천연물 연구 환경, 생태계 등이 많이 좋아진 만큼 천연물의약품 분야에 진출해 성과를 내는 것은 농생명산업 시장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뒀다.

한국 기업들도 천연물의약품 분야를 열심히 노크 중이다. 대표적으로 동아ST가 산마와 부채마에서 추출한 혼합물로 만든 당뇨병성신경병 치료제 DA-9801이 미국에서 2상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3상 실험을 앞둔 걸 꼽을 수 있다. 이 치료제는 진통 및 신경재생 효과가 입증돼 천연물의약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임상 승인을 받았다. 성상현 교수는 “국내개발 화학합성 신약도 받기 힘든 FDA 3상 허가를 받았고 또 성공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평가했다.

제약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한국에서 ‘획기적’인 천연물 신약 사례들이 더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천연물의약품 개발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는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인프라 세계 최고 수준

인프라의 맨 앞에는 농업기술 세계 5위 수준을 유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농촌진흥청이 있다. 농촌진흥청은 전체 직원 1847명 중 연구직이 1165명이고 이 중 900명 가까이 박사학위 소지자일 만큼 최고 수준의 인적, 물적 연구 인프라를 갖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있는 전북 전주의 농생명산업 연구단지는 633만 m²(192만 평)로 단일규모로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단지다. 라승용 농촌진흥청장은 “농촌진흥청의 본래 목표인 국민의 식량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최우선 과제를 두겠지만 이것을 바탕으로 식의약 및 기능성 소재 등으로 농축산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관련 연구를 더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농촌진흥청이 농산물을 바탕으로 천연물의약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능성연구, 독성실험, 약효증명 등 기초 연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농촌진흥청이 기초물질을 찾아내 상품화한 ‘누에그라’의 예에서 천연물의약품 개발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누에그라’는 농촌진흥청 류강선 박사팀이 기술 이전한 것을 바탕으로 근화제약이 만든 건강보조식품이다. 개발과정에 참여한 안미영 연구관(약학박사·독성학 전공)은 “신약개발은 모든 것의 총합이므로 각각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역할을 분담하는 게 중요하다”고 기능성 식품연구와 신약개발이 갖는 연관성을 설명했다.

농촌진흥청은 2011년부터 10년간 6000억 원 규모의 차세대바이오21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기술을 대학 및 기업에 이전해 전문분야 발전은 물론 천연물 바탕의 식품, 의약품 산업화 기반을 닦고 있다. 라 청장은 “농생명 R&D는 그 파급 효과가 크고 배후 시장이 블루오션인 만큼 활발한 연구를 위해서는 현재 국가 R&D 전체예산 중 농촌진흥청에 배정된 3%인 6300억 원을 최하 7% 이상인 1조5000억 원으로 늘려 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약학 인재 육성 활성화가 관건

천연물의약품 개발은 관련 학문의 발전을 이끌고 대학의 특성화에 이바지해 대학발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천연물의약품은 단순하게는 약학과 농업의 융합이지만 약학 자체가 화학, 생물학, 병리학, 의학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여기에 농업과의 융·복합에 필요한 많은 학문들이 관계한다. 약학은 학문적으로 ‘논문 생산의 보고’일 정도로 연관 학문을 자극해 발전을 유도한다. 2016년 대학 알리미 자료에 의하면 약대가 있는 대학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편수가 없는 대학에 비해 70%나 많았다. 특성화(전문성)를 바탕으로 발전한 대학은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역할이 가능하기에 산업발전-대학발전-지역발전의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데 있어 농생명기반의 천연물의약품 개발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원도연 원광대 교수(전 전북발전연구원장)는 “천연물의약품 개발은 지역에 파급효과가 크다. 비록 의약품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기능성 식품산업, 화훼산업 등 농생명 기반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6차산업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 교수는 이어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대학들이 겪는 어려움을 천연물의약품 유관산업과의 협업을 통해 대학발전과 지역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면 지역균형발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천연물의약품 개발의 관건은 약학교육의 방향성과 부족한 연구약사를 어떻게 증원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의약품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전문성을 겸비한 연구약사 없이는 그 결실을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상건 서울대 약대 교수는 “임상연구 작성, 실행, 조정에 필요한 약사가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인공지능(AI)이 넘볼 수 없는 고도의 직능성과 창약 능력을 함께 갖춘 ‘미래 약사’가 사회적, 산업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병환 대전대 교수(전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장)는 “BT산업이 기간산업화 하는 초기 단계다. 여기서 의사, 약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약사의 경우 R&D를 넘어서 R&BD(연구, 비즈니스, 개발)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약대 교육에 경영학, 법학을 가미한 미국식 모델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손진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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