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프랑스 속 알제리인의 언어-정체성 관계 절묘하게 엮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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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의 실종/아시아 제바르 지음·장진영 옮김/308쪽·1만3000원·을유문화사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2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한 주인공 베르칸은 60대가 되어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그는 이곳에서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알제리 독립전쟁 전후 상황 등을 회상하며 자신의 청소년기에 대한 소설을 쓰고자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이 인물들의 정체성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언어의 관계를 교차시키며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서 언어는 한때 식민지였던 알제리인의 정체성, 나아가 연인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것, 타인에게 은밀한 속내를 들려주는 방법과도 연결된다.

예를 들면 베르칸이 프랑스에서 20년간 함께했던 프랑스 여인 마리즈는 프랑스어밖에 할 줄 모르고, 그가 고향으로 떠나가며 관계도 소원해진다. 대신 알제리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여인 나지아는 아랍어를 쓴다. 두 여인은 각각 베르칸이 떠나온 프랑스, 그리고 그의 조국인 알제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린 시절 베르칸은 학교에서 프랑스 국기 대신 알제리의 국기를 그렸다는 이유로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여기에서도 저자가 설정해 놓은 언어의 역할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아버지는 완벽하지 않은 프랑스어로 교장 앞에 불려가 떠듬떠듬 변명하고, 어린 베르칸을 몸소 때려 보이면서까지 사죄한다. 그러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알제리 언어로 아들을 다독인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언어와 당대의 역사적 배경, 갈등 상황들이 절묘하게 엮여 들어간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는 알제리와 프랑스 두 국가를 오가며 한평생을 살았다. 매해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아프리카의 대표적 작가이며 이전 작품에서도 언어, 역사, 여성, 식민주의 등을 주제를 다뤄 왔다. 또한 1960년대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아랍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많은 지식인이 프랑스로 망명을 해야 했던 상황도 소설에 녹아 있다.

결국 베르칸은 모국어를 그리워하고 회귀하고 싶어 하면서도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고백한다. 그는 프랑스 여인 마리즈로 인해 프랑스 생활에서 안정감을 얻었으며, 덕분에 그곳을 정리하고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프랑스어는 진정한 그의 자아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좁은 문”이기 때문이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프랑스어의 실종#아시아 제바르#알제리#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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