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누군가의 삶이자 세상인 작은 서점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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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개브리얼 제빈 지음·엄일녀 옮김/320쪽·1만4800원·루페

미국 매사추세츠주 남동쪽의 앨리스섬에서 작은 서점 ‘아일랜드’를 운영하는 에이제이 피크리는 괴팍한 인물이다. 아내가 죽은 후 그의 까칠함은 더 심해졌다. 서점에 들여놓는 책 역시 기준은 하나다. ‘내 취향에 맞느냐, 안 맞느냐.’

따분하리만큼 똑같은 그의 일상에 연거푸 새로운 인연들이 들이닥친다. 출판사 신출내기 영업사원 어밀리아, 책방 앞에 버려진 아이 미아, 사고가 터질 때마다 찾아오는 램비에이스 경관…. 새로운 인연들은 그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피크리에겐 노후를 보장하는 보물이 있었다. 미국 문인 애드거 앨런포가 18세 때 단 50부만 익명으로 출간한 희귀본 시집 ‘태멀레인’이다. 40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보장된 것이기에 서점 문을 닫게 되면 이를 경매에 팔아 수익금으로 먹고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차질이 생겼다. 출판사 영업직원 어밀리아를 처음 만난 날 진탕 술을 마셨고, 그날 태멀레인을 도난당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서점엔 25개월짜리 아이 미아가 버려졌다. 계획과 달리 아이를 입양하고 아빠가 되면서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재밌는 건 피크리의 인생 자체가 억지스러울 만큼 ‘책’으로 점철된 삶이란 점이다. 까칠한 그가 사랑에 빠지는 계기도 여성이 자신과 책에 대한 취향이 같다는 걸 발견했을 때이고, 일상생활의 대화 자체에서도 문학작품은 필수 단어로 등장한다. 세상 모든 인연이 ‘서점’으로 연결돼 있고, 서점이란 공간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떤 보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의 장점은 손에 한번 들면 빨리 읽히는 속도감이다. 게다가 동네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때론 지적인 로맨스를, 때론 스릴러를 닮은 반전의 맛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특히 그의 새로운 배우자의 존재가 누구인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태멀레인을 훔친 범인이 누구인지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각 장의 첫 페이지는 피크리의 다양한 문학작품에 대한 논평이다. 과하게 피크리의 취향위주의 분석이지만, 이를 읽는 재미도 상당하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섬에 있는 서점#개브리얼 제빈#엄일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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