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vs 빈…北美, 본격적인 실무협상 앞두고 힘겨루기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9일 14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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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으로 비핵화 협상에 진전을 이룬 북미가 본격적인 실무협상을 앞두고 힘겨루기를 시작하고 있다. 특히 물밑에서 실무협상을 할 장소를 놓고 의견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협상 내용에까지 영향을 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8일 중국을 끝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2박 3일간 아시아 순방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 그리고 세부적인 비핵화 논의를 진행할 북미 실무협상 라인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의 협상 라인도 공식화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8일 중국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 부상이 비건 대표의 카운터파트라고 확인한 뒤 “우리는 일련의 이슈들에 대해 이전보다 더 빈번한, 보다 고위 레벨의 실무그룹 논의를 하게 될 것이다. 이는 좋은 뉴스”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건 특별대표를 임명한 뒤 지난달 오스트리아 빈을 실무협상 장소로 제안했지만 북한은 아무런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이번 4차 방북 때는 최 부상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바람에 비건 대표와의 상견례가 성사되지 못했다.

협상장소로 빈은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워싱턴의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판문점을 협상 장소로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차 협상 때처럼 홈그라운드를 고집해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전략을 쓸 것이라는 분석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북한은 3차 남북 정상회담과 폼페이오 장관 평양 초청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2차 (북-미) 정상회담 판에 앉히는 데 사실상 성공했다”며 “앞으로는 북한 페이스대로 협상을 끌고 가려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실무협상 장소로 판문점을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무회담 장소와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은 귀국 전 기자들에게 “우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전에 여기서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가 서울인지, 평양이나 판문점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 기자가 ‘장소가 빈이 아닐 수 있냐’고 묻자 폼페이오 장관은 “누가 알겠느냐. 어디가 될지 모른다”고 답변했다. 이는 미국의 제안에 대해 북한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걸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실무협상을 책임질 비건 특별대표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다.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판문점에서 싱가포르 현지까지 미국은 성 김 주필리핀대사를 내세워 최 부상과 실무협상을 진행했지만 판정패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김 대사는 최 부상에게 밀렸고 결과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차 북-미 정상회담의 승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솔직하면서도 선이 굵은 협상가로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비건 특별대표에 대해 “나를 위해 일하는 키맨”이라고 치켜세운 뒤 “북한과의 관계를 다루고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뿐 아니라 한국, 일본, 그 외 중국 등 깊은 이해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들과 협력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비핵화가 가능한 한 빠르게 진행되도록 하는 데 있어 동맹 등 다른 나라들과 단절 없이 조율하는 책임도 맡게 될 것”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비건 특별대표는 기자들에게 “어젯밤 내 카운터파트에게 가능한 한 빨리 보자고 초청장을 발송했다”며 “우리는 실제 특정한 날짜와 장소에 대해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 부상에 대해 “우리 쪽에 잘 알려진 매우 노련한 협상가이자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양자 모두를 위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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