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 큰손들도 北엔 0원…문재인 정부 800만달러 지원 고민 커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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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국제적 고립 심화]올해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 현황 분석

지난달 14일.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마련된 유엔의 초강력 대북제재 결의가 나온 지 이틀 뒤 문재인 정부는 800만 달러(약 91억 원)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 추진을 밝혔다. “김정은의 핵자금으로 쓰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도 지원을 하고 있다”며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23일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의 인도적 지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 선진국은 이미 대북 인도적 지원을 끊었거나 최소한의 명맥만 유지하며 강력한 대북 압박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평양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모든 돈줄을 빈틈없이 막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 트럼프 행정부, “대북 인도적 지원 1달러도 안돼”

미국은 올해 국제사회에 가장 많은 32억7620만 달러(약 3조7046억 원)의 인도적 지원금을 내놓았다. 하지만 북한엔 전체 지원액의 0.03%인 100만 달러(약 11억3000만 원)만 줬다. 이것도 1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퇴임 전 지원을 약속했던 금액이다.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해 강력한 군사적, 경제적 압박을 펼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여태껏 북한에 단 1달러도 허용하지 않으며 철저히 압박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올해 전 세계 인도적 지원 목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지원금을 내놓은 독일과 유럽연합(EU)도 북한에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영국, 일본도 수억 달러를 국제 기아, 질병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쾌척했지만 북한엔 아예 지갑을 닫았다.

전통적으로 인권을 중시하는 주요 서방 선진국이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까지 외면하는 것은 그만큼 북핵 문제가 절박하고, 해결을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압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달 15일 화성-12형 발사까지 4개월 동안 10번의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최근 한 달 넘게 도발을 자제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갔지만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비핵화 관련 국제회의 참석차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았던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은 22일 “핵 포기를 강요하는 대화엔 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미국과의 힘의 균형을 실현하는 게 최종 목표”라며 추가 도발을 예고했다. 김정은은 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틀어쥐고 주체의 사회주의 한길을 따라 힘차게 전진하여 온 것이 천만번 옳았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 길로 나아가야 한다”며 핵을 쥔 채 제재를 정면 돌파하겠다고 선언했다.

○ “북한 기름값 지난해보다 3배까지 올라”

하지만 유엔 제재와 미국, EU, 일본 등의 독자 제재에 이어 주요국의 인도적 지원마저 대부분 끊기면서 북한 경제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소식통을 인용해 9월 말부터 북한에서 ‘727’로 시작하는 번호판 차량 외에는 급유가 금지됐다고 전했다. 일부 고위급 간부들을 제외하곤 차량 급유조차 하기 힘들 만큼 석유 수급 사정이 나빠졌다는 것.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 역시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북한의 기름값이 지난해의 3배까지 올랐다”며 “야간 상업시설들은 태양광으로 충전해 쓸 태양광 전지판과 배터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북한은 외교 무대에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최근 독일, 스페인, 멕시코, 페루, 쿠웨이트 등이 자국 주재 북한대사를 추방한 데 이어 미얀마, 베트남 등도 자국 주재 북한 외교관을 추방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비교적 북한에 우호적이었지만 우간다는 북한 회사 대표 등을 내쫓았다.

이런 상황에서 8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결정한 문재인 정부는 이제 집행 결정만을 앞두고 있다. 다만 내달 트럼프 대통령 방한을 고려해 시기를 미루는 것을 검토 중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 대화 가능성 등을 고려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지만 국제사회 기류를 고려해 집행을 미루고 있다”며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북한#문재인 정부#국제사회#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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