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완준]넉달만에 종적 감춘 ‘드레스덴 구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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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정치부
윤완준·정치부
최근 정부의 공식 언급에서 ‘드레스덴 구상’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있다. 드레스덴 구상은 박근혜 대통령이 3월 독일 방문 중 천명한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이다.

대북(對北) 소식통은 23일 “통일부가 드레스덴 구상에 대해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들도 “당분간 북한 주민들의 삶을 높이는 민생 인프라 분야, 대북 인도적 지원과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사회문화 교류를 확대하면서도 드레스덴 구상에 관해서는 로키(low key)로 갈 것”이라고 말한다.

민생 인프라를 위한 남북 협력이나 사회문화 교류 확대가 사실 드레스덴 구상에 따른 것이지만 ‘드레스덴’이란 네 글자를 가급적 거론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얼핏 이해하기 어렵지만 현재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상황’이다.

실제로 통일부는 15일 드레스덴 구상에 포함된 농·축산, 보건의료 분야에서 30억 원 규모의 남북협력기금을 민간단체에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드레스덴 구상과 연결짓지 않았다. 통일부 홈페이지에도 드레스덴 구상의 의미와 내용을 국민들에게 소개하는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드레스덴 구상을 흡수통일 시도라고 주장하면서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최근 북한은 남북 합의로 추진했던 산림협력 사업에 대해 “드레스덴 구상과 연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걸 수용할 수 없다”며 돌연 ‘보이콧’ 했다.

꽉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남북협력을 가동시키고자 하는 통일부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거부감을 느낀다는 이유로 드레스덴 구상을 거론하지 않는 방식을 취한 것은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당장은 드레스덴 구상과 관련 없는 남북 협력사업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실은 드레스덴 구상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을 바꿀 것이냐”고 반문했다.

북한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포용)정책에 대해서도 흡수통일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정부가 시간을 두고 설명한 끝에 결국 이에 호응하고 남북교류에 나섰다. 북한의 반발을 우회하는 방식이 아니라 드레스덴 구상의 진심을 북한에 설명하고 설득할 대화에 나설 시점이 됐다고 본다.

윤완준·정치부 zeitung@donga.com
#드레스덴 구상#흡수통일#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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