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양승태 법원행정처, 법원 예산 빼내 비자금 조성 정황”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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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상고법원 추진위해 수억원 모아”
외교부 징용 손배소 의견서 초안, 행정처가 사전 검토해 준 혐의도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전국 각 법원에 배정된 예산으로 수억 원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해 사용한 정황을 포착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1부(부장검사 신봉수)와 특별수사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2015년 전국 일선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 3억5000여만 원을 다시 모아 법원행정처 비자금처럼 조성했다는 내용이 담긴 행정처 내부 문건을 여러 건 확보했다고 4일 밝혔다.

검찰이 확보한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조성한 자금을 상고법원 추진을 위해 각급 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간부 등 고위 법관들에게 격려비와 대외활동비 명목으로 1000만∼2000만 원씩 전달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금을 인출할 때 500만 원 이상을 한 번에 인출하면 안 되니 여러 차례 나눠서 뽑고, 이후 개인이 식사한 영수증 등으로 허위 증빙을 하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고 한다.

또 2014년 작성된 문건에는 “공보관실 예산으로 청구하고 고위 법관들 활동비로 사용하자”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처음부터 법원행정처가 국회와 기획재정부를 속여 예산을 따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각 법원 재무담당자들이 배정된 예산 전액을 여러 차례 현금으로 인출해 만든 ‘뭉칫돈’을 직접 대법원 측에 전달했고, 대법원 예산 담당관이 담당관실 금고에 두고 관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법원 예산 담당자도 최근 검찰에서 “문건에 나온 내용대로 비자금이 조성되고 사용됐다. 감사원이 2016년 대법원 공보관실에 배정된 7800만 원에 대해 시정명령한 이후 고위 법관에게 돈을 건네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2015년 처음으로 편성된 예산 전액이 비자금으로 사용된 데다 전국의 상당수 법원이 동원된 만큼 법원행정처장 등 고위 관계자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지연 의혹에 대해 검찰은 2015년 중반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식사 자리를 만들어 외교부 의견서 초안을 봉투에 넣어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외교부 의견서 초안에는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고, 지난 50년간 한일관계의 근간이 되어온 협정의 해석이 흔들릴 경우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가 손상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로부터 2주 뒤 이 전 기조실장은 “내용 좋다. 추가 의견은 없다”는 취지로 검토한 의견서를 그대로 봉투에 넣어 외교부 담당 국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동준 hungry@donga.com·전주영 기자
#양승태 법원행정처#법원 예산#비자금 조성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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