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치영]가시밭길을 선택한 문재인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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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장
신치영 경제부장
문재인 대통령이 일주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과감한 규제 혁신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를 가로막는 규제부터 과감히 혁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규제 혁파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이날 발언은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 방문을 둘러싼 ‘투자 구걸’ 논란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를 비운 사이 한 진보 성향 신문의 보도로 촉발된 이번 일을 문 대통령이 어떻게 정리할지 나는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향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향방까지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이 이번 일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규제 혁신을 강조하는 걸 보고 문 대통령이 ‘투자 구걸’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행간으로 읽혔다.

규제 완화를 대기업에 대한 특혜로 규정해온 진보 진영은 문재인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데 대해 불만을 쌓아 왔다. ‘투자 구걸’ 주장은 이념적 선명성을 유지하려는 일부 세력의 집단적 불만이 투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문 대통령이 진정 규제 혁파를 완수하려 한다면 진짜 힘겨루기는 지금부터다. 각종 규제로 이익을 보고 있는 기득권과의 싸움이다. 기득권층의 저항은 이념주의자들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현실적이다. 밥그릇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의 저항으로 규제 개혁이 안 되는 사례는 주변에 널려 있다. 국민의 편의를 위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을 늘리려는 정부의 시도는 붉은 머리띠를 매고 거리로 뛰쳐나온 약사들의 반발로 번번이 좌절된다. 미국과 중국 등 해외에서 널리 보편화돼 있는 원격의료는 의사들의 저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안경의 온라인 판매는 안경사들의 반발로 지금껏 금지돼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 도입은 승객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택시업계의 반발로 한 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더 들자면 한이 없다.

과거 정부가 규제 혁신을 외치면서도 모두 실패한 건 기득권층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고 장관들이 현장을 뛰어다녀야 가능한 일이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꽃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에게 현금을 나눠주고, 가난한 노인들에게 기초연금을 더 지급하고, 이름도 다 기억하기 힘든 온갖 장려금에 수조 원씩 예산을 배정했다. 모두 수혜자들의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규제 혁파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반발은 거셀 것이고 지지율은 더 떨어질 수도 있다. 기득권의 저항은 더욱 조직화되고 노골화될 것이다. 기득권의 표에 눈먼 정치인들은 이들의 강력한 후원자다. 선거철이 가까워질수록 기득권 세력과 손잡는 정치인들이 늘어갈 것이다.

규제 혁파는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길이다. 한국 경제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다면 전봇대를 뽑지 못한 이명박 정부와 손톱 밑 가시를 빼지 못한 박근혜 정부와 달리, 한국 경제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정권으로 기억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가시밭길을 걸을 준비가 진정 돼 있는가. 문 대통령에게 응원을 보낸다.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
#문재인 대통령#규제 혁신#경제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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