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안정 도움 된다”는 국민연금 개편안, 기금고갈 몇년 늦출뿐 적자폭 되레 커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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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로 연금 지출 대폭 늘어
보험료 인상효과 4∼7년이면 끝나… 50년뒤 보험료율 30%대 치솟아
정부 이르면 26일 개편안 국회제출


정부가 국민연금 재정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힌 ‘더 내고 더 받는’ 개편안이 장기적으로 현행보다 기금 적자폭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감소와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보험료 인상 수입보다 연금 지출 규모가 급격히 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금 고갈 시점을 다소 늦출 수 있다는 점만을 부각해 고갈 후 미래세대가 떠안을 ‘보험료 폭탄’을 감추려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국민연금 개편안을 26일경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개편안에는 14일 발표한 대로 ①현행 제도(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 유지 ②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2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인상 ③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2% 인상 ④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3% 인상 등 네 가지 방안을 담았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정부 개편안이 재정 안정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14일 “③안과 ④안은 재정 안정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기금이 2057년에 고갈될 전망인 반면 ④안은 재정 고갈 시기를 2062년, ③안은 2063년으로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보험료 인상으로) 국민연금의 재정 기반이 아주 튼튼해진다”고도 했다.

이 주장은 기금 고갈 전까지는 ‘거짓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전혀 달라진다. 복지부가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에게 제출한 국민연금 장기 추계 자료에 따르면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그대로 둘 경우 연금 고갈(2057년) 이듬해인 2058년 보험료 수입은 150조5600억 원, 연금 지출은 438조1390억 원으로 추산돼 그해 수지 적자는 287조5790억 원으로 예상된다. ③, ④안의 경우 연금 지출이 늘어나지만 보험료 수입 증가분으로 인해 적자 규모는 각각 209조7540억 원, 232조8930억 원으로 현행 유지 때보다 작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의 효과는 4∼7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저출산 고령화로 보험료를 낼 젊은 세대는 줄어드는 반면 연금을 받아갈 노인 인구는 급증하기 때문이다. 2068년 예상 적자는 현행 제도 유지 시 476조6820억 원이지만 ③안의 경우 483조2840억 원, ④안은 535조870억 원으로 각각 커진다.

④안을 선택하면 현행 유지 때보다 연간 최대 58조 원의 적자가 추가되는 셈이다. 이런 수지 불균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2078년 ④안의 수지 적자는 722조7460억 원으로 현행 유지 때보다 96조 원 이상 많아진다. 연금 재정을 심각하게 악화시키는 방안이 ‘재정 안정 방안’으로 둔갑한 셈이다.

기금이 고갈되면 지금처럼 연금을 쌓아뒀다가 주는 ‘적립식’을 포기하고 그해 걷어 그해 주는 ‘부과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해 보험료는 고스란히 청장년층의 부담이 되는 것이다. 2068년에 국민연금 제도를 지탱하려면 현행 제도를 유지해도 보험료율이 29.7%까지 치솟는다. ③안에 따른 필요 보험료율은 32.9%, ④안은 36.2%에 이른다. ④안이 시행될 경우 올해 태어난 아이가 50세가 되면 월급 300만 원 중 108만6000원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김순례 의원은 “정부가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달콤한 약속 뒤에 숨어 진짜 ‘보험료 폭탄’을 감추고 있다”며 “재정 안정 논의는 온데간데없이 국민 눈높이 운운하며 노후소득 보장만 내세우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 간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국민연금 개편안#고령화#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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