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임명 나흘만에 자진사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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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조작’ 연루에 결국 낙마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차관급)이 임명된 지 나흘 만인 11일 자진 사퇴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고위공직자가 사퇴한 것은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과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기정 국가안보실 2차장에 이어 네 번째다.

박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맡으며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에 공저자로 참여하고 황 전 교수로부터 연구 과제를 위탁받으며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는 논란이 제기돼 과학기술계와 정치권의 사퇴 요구를 받아 왔다.

박 본부장은 이날 오후 6시경 정부과천청사 과기정통부를 떠난 뒤에야 출입기자들에게 A4용지 5쪽짜리 ‘사퇴의 글’을 보냈다. 박 본부장은 별첨자료를 포함해 4430자 분량의 글을 통해 황 전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받아 떠밀리듯 물러나는 것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11년 전 사건은 저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였다”면서 “사건이 (노무현 정부 시절) 제 임기(대통령정보과학기술비서관) 중에 일어났다고 해서 사건의 주동자나 혹은 적극적 가담자로 표현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또 “임기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삶의 가치조차 영원히 빼앗기는 사람은 정부 관료 중 아마도 저에게 씌워지는 굴레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가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별첨자료에는 황 전 교수 사건 당시 연구비 지원과 사용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박 본부장의 사퇴 직후 청와대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기로 했다. 청와대는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인사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청와대에선 “장관 지명자에겐 인사청문회로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가 있는 것처럼 박 본부장에게도 해명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10일 열린 박 본부장의 기자회견 이후 여론의 추이를 살펴 판단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퇴 여론이 갈수록 커지자 10일 오후 늦게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송구스럽다”는 대통령의 뜻을 전하며 인사 배경을 설명했지만 여론을 돌리진 못했다. 여권 관계자는 “한반도 정세가 엄중하고, 다음 주 8·15 경축식, 취임 100일 등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점에서 박 본부장 문제를 더 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박 본부장의 사퇴에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으나 본인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짧은 서면 논평만 냈다. 여당에서도 박 본부장 인사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컸던 만큼 혼란스러운 당내 사정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야당은 청와대의 부실한 추천과 검증 과정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자유한국당 강효상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계속 ‘보나코(보은-나 홀로-코드) 인사’를 밀어붙인다면 국정 혼란을 야기하고 국민의 저항만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도 “우리 편이라면 부적격 인사라도 앞뒤 가리지 않고 임명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우열 dnsp@donga.com·유근형 기자
#박기영#자진사퇴#황우석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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