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빚 탕감 90%까지 늘린 정부, 서민정책 실패 자인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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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원회가 어제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를 조정한 일반 채무자 중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내년부터 90%까지 빚을 탕감해 주는 방안을 발표했다.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이 아닌 일반 채무자는 60%까지만 탕감받을 수 있다. 현 정부 들어 채무 조정과 관련해 2013년 3월, 2015년 6월, 올해 1월에 이어 4번째 나온 대책이다.

 국민행복기금은 ‘가계부채 해결’을 내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1호에 따라 2013년 3월 출범한 제도다. 지난 3년간 저소득 다중채무자 49만 명을 대상으로 채무 조정이 이뤄졌지만 가계부채는 2013년 1000조 원에서 올해 6월 말 사상 최대인 1257조 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3월 ‘국민행복기금 출범 3년의 성과’ 자료에서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며 자화자찬했던 금융위가 불과 6개월 만에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으니 정책 실패를 자인한 것인지 묻고 싶다.

 한국의 가계부채가 주요국 가운데 세 번째로 빠르게 늘고 있다는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결과까지 나왔다. 빚을 갚기 힘든 ‘한계가구’가 134만 가구나 되는 상황에서 서민층에 희망을 주는 금융 지원은 시급하고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책이 수시로 바뀌면 성실하게 빚을 갚던 기존 상환자와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더구나 이번 대책은 박 대통령이 23일 “많은 분들이 채무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패자부활전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한 직후 나왔다. 정부로선 야당의 채무 조정 방안이 주목을 끌자 정책 주도권을 되찾고 싶었겠지만 이벤트성 정책 수정으로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김대중 정부의 벤처 육성정책,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이명박 정부의 서민금융 등 역대 정부의 금융정책은 한결같이 용두사미로 끝났다. 금융정책을 정권의 브랜드쯤으로 여겨 근시안적 대책만 내밀었기 때문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가계부채 급증을 경고하면서 “당국의 대책이 아직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부채를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키우지 않으려면 정권에 따라 출렁거리지 않는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
#금융위원회#국민행복기금#빚 탕감#서민정책#가계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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