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爭에 볼모 잡힌 경제법안… 이견 없는 ‘규제프리존’도 불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한국경제 3중고/정책 표류]경제위기 키우는 ‘무책임 정치’

柳부총리 “구조조정 가속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신산업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더욱 역량을 집중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柳부총리 “구조조정 가속화”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신산업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더욱 역량을 집중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정부는 지난해 말 수도권 이외 14개 시도 지역을 ‘규제프리존’으로 지정해 지역별 전략산업을 육성한다는 ‘2016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획기적인 규제 완화에 비수도권 지역들은 반색했고, 야당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당연히 19대 국회 임기 안에 처리될 것 같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20대 국회가 문을 연 지 석 달이나 지났는데도 규제프리존특별법 관련 논의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공유숙박업 육성, 한국형 융프라우 산악열차 건설 등 연관 사업들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처럼 정치권과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경제 정책들이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가 되살아날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 무책임한 정치권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올 1월 13일 이후 정부는 공유경제 육성 방안(2월), 신산업 육성 방안(4월), 청년·여성 일자리 대책(4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 확충 방안(6월), 서비스경제 발전 전략(7월), 추가경정예산 편성(7월) 같은 정책들을 쏟아냈다.

이 가운데 제대로 진행 중인 정책은 거의 없다. 대부분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린 탓이다. 정부 관계자는 “4월 총선 이후 여소야대 정국이 되면서 대부분의 경제정책이 사실상 중단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의 일차적인 원인은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에 있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야당은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경제정책을 별도의 정치적 사안과 연계하는 구태는 여전하다. 추경이 대표적이다. 여야가 여론의 질타에 떠밀려 추경안을 30일 통과시키기로 합의했지만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 증인 채택 등 정치적인 문제를 빌미 삼아 경제 살리기에 쓸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뒤늦게 추경이 통과됨으로써 자칫 추경 재원이 올해 안에 모두 집행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정부 예산이 확정돼야만 이를 토대로 자체 추경을 편성하고 지방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추석 등을 감안하면 지자체들이 추경을 편성하고 실제 집행하기까지 여유 시간이 거의 없다.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여야 간 견해차가 없는데도 법안 처리가 미뤄지는 것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윤장현 광주시장, 이춘희 세종시장, 최문순 강원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 등 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까지 입법을 서둘러 달라고 촉구할 정도다. 여권에선 야당이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지렛대 삼아 경제민주화 법안 등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들을 통과시키려 한다는 관측이 많다.

○ 무기력한 정부

경제정책 표류에는 ‘유일호 경제팀’의 무기력함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현 경제팀이 출범한 지 25일로 226일이 됐지만 적극적으로 국회를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책 발표만 해놓고 방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현 경제팀은 총체적 난국을 돌파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다.

박근혜 정부 임기가 1년 6개월도 채 남지 않다 보니 실무를 맡은 관료들의 태도도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유 부총리가 기회 있을 때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적극 국회를 설득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관료들은 의례적인 말로 받아들이는 실정이다. 이는 1, 2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정부의 경제활성화 30대 중점 법안 중 ‘1호 법안’으로 꼽히지만, 야당과 의료계는 ‘의료 민영화를 위한 포석’이라며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 중이다. 정부는 2014, 2015년만 해도 야당의 반발을 감안해 의료민영화 금지 규정을 넣은 수정안을 야당에 제안하는 등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다. 한 정책담당자는 “새롭게 일을 벌이기보다는 정권이 끝날 때까지 지금껏 마무리해 놓은 정책만 잘 관리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귀띔했다.

○ 경제정책 실종 장기화 우려

문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빠르게 대선 체제로 전환하고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이 가속화되면 경제정책 실종 상황이 1년 이상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외 경제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 가계부채, 구조조정, 소비절벽 등 대내 악재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금리 인상,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대외 악재들도 수두룩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정부는 대국회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국정 운영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흐트러진 정부 기강을 바로잡고 초당적으로 국회의 협력을 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 리스크로 인해 경제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며 “대통령의 경제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한국경제#정책#표류#경제법안#규제프리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