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스톱… 자원公기업, 내년까지 해외자산 6兆 팔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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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거꾸로 가는 해외자원개발]朴정부 “공기업 정상화가 먼저”
광물자원公-석유公-가스公, 자원개발 인력-조직 대대적 축소
서둘러 팔아 ‘헐값 매각’ 논란도
업계 “현 정부선 ‘자원개발’ 금기어”
정부, 성공불융자 예산 전액 삭감… 전문가 “단기성과 어려운 분야
정치논리에 정책 흔들려서야”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섬. 공항에서 출발해 비포장도로를 9시간 달리면 검은 광산 지역이 나온다. 국내 에너지 공기업에 근무하는 B 씨는 2013년 이곳의 광산개발 임무를 맡았다. “광산지역이라 지하수가 오염돼서인지 수돗물을 틀면 누런 물이 나왔습니다. 오지라 먹을 곳, 잘 곳 어디 하나 편한 데가 없었지만 자원개발이 워낙 중요한 과제였으니 감수했지요.”

더운 날씨에 에어컨 하나 변변치 않은 곳에서 녹물로 버텼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B 씨에게 하던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정리하고 대대적으로 축소한다는 거였다. “자식을 떼어 보내는 심정이었지요. 몇 달씩 오지에서 고생하며 뚫어놓은 자원이었는데….”

○ 해외자원개발 ‘올스톱’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실패 논란과 공기업의 부실경영이 겹치면서 국내 자원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중단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해외자원개발 신규 사업 수는 2011년 71개에서 2015년 10개로 86% 줄었다. 투자액도 같은 기간 117억1600만 달러(약 13조8249억 원)에서 67억9300만 달러로 42% 줄었다. 올해 들어서는 신규 사업이 한 건도 없다.

신규 사업은커녕 한국석유공사나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자원 공기업들은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방침에 따라 지금까지 축적한 해외자산을 잇달아 매각하고 있다. 2017년까지 보유 중인 해외자산 6조 원어치를 팔아야 한다. 서둘러 자산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헐값 매각 우려도 나온다. 석유공사는 2009년 1조3700억 원에 샀던 캐나다 정유회사 하비스트의 자회사 날(NARL)을 2014년 10분의 1도 안 되는 900억 원에 매각해 논란이 됐다.

해외자원개발 관련 인력과 조직도 줄이고 있다. 석유공사는 해외 자회사 인력을 20% 이상 줄이고 미국, 이라크 등 5개 해외사무소도 폐쇄하기로 했다. 광물자원공사도 해외사무소 11곳 중 8곳을 폐쇄하고 전체 직원의 20%(118명)를 감축할 예정이다.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예산도 줄었다. 2011년 9007억 원이던 해외자원개발 지원예산은 2015년 3588억 원, 올해 1202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탐사사업을 대상으로 사업이 성공하면 원리금에 특별 부담금을 징수하고, 실패하면 융자액을 전액 또는 일부 감면해주는 ‘성공불융자’ 예산은 2015년 1437억 원에서 올해 0원으로 100% 삭감됐다.

민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자재 값 하락으로 기존에 벌였던 해외사업 실적이 떨어지면서 신규 사업은 엄두조차 못 내는 상황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2013년 캐나다 철광석 광산에 지분 투자를 한 이후 지금까지 신규 투자 실적이 없다”며 “요즘이 우량자산을 저가 매수할 좋은 기회라고 하지만 주식처럼 쉽게 들어가고 빠져나올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 방만·부실경영 상징이 된 해외자원개발

국내 기업의 해외자원개발 투자가 위축된 데는 석유, 석탄 등 원자재 가격이 예상외로 급격히 떨어진 원인이 크다. 세계적인 경기 둔화로 원자재 수요가 급감했다. 비싸게 사들였던 해외자산이 원자재 값 하락으로 부실해지면서 빚을 내서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했던 공기업들은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됐다. 석유공사,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 3개 공기업의 빚은 지난해 기준 55조9000억 원. 광물자원공사의 부채비율은 무려 6905%에 달했고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부채비율도 각각 453%, 321%나 된다.

자원 공기업들은 면목이 없다며 입을 다물고 있지만 대대적인 감사에 이은 국정조사 등 집중적인 책임 추궁에 꼭 필요한 자원개발마저 위축됐다는 분석도 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현 정부에선) 해외자원개발은 일종의 ‘금기어’”라며 “지난 정부의 실패 사례로 낙인찍혀 말도 못 꺼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민간에서는 해외자원개발을 하더라도 다시는 정부에 손 벌리지 않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민간 에너지업체 관계자는 “얼마 되지도 않는 지원금 때문에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됐다”며 “성공불융자에 그야말로 ‘학을 뗐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자원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정부는 공기업들의 해외자원개발 기능을 분리해 통폐합하거나 민간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원개발을 맡는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안 등도 거론되고 있지만 모두 공기업의 자원개발 기능을 축소하고 해외자산을 매각하는 것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자원 공기업의 구조조정안은 다음 달 확정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해외자원은 정리하고, 비리는 엄중히 처벌해야 하지만 해외자원개발이 위축돼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창우 동아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자원개발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정치적인 논리로 정책 방향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자원개발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성과 관련 인재가 사장(死藏)되면 나중에 바로잡으려 해도 어렵다”고 말했다.

세종=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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