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사회장’인 이유…“영부인이기 전에 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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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6월 13일 15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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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가족은 가족장 원해…여성·정치계 주장으로 사회장 결정
소천한 역대 영부인 5명 중 4명이 가족장

고(故) 이희호 여사의 장례식이 영부인 최초로 ‘사회장’으로 치러지는 이유는 뭘까.

‘사회장’은 사회에 공적을 남긴 인사가 사망했을 경우 사회단체가 자발적으로 모여 거행하는 장례 의식이다. 국가나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했을 때 국가 차원에서 치르는 국가장(국장·국민장) 다음의 예우다.

실제 고(故)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 여사,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등 각계 사회단체인사들의 장례식이 사회장으로 엄수됐다.

그간 영부인은 대부분 ‘가족장’으로 장례식을 치렀는데, 이 여사는 ‘영부인’이라는 상징성보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역할이 더 크기 때문에 사회장으로 열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한수 김대중평화센터 기획실장은 사회장을 치르게 된 배경에 대해 “원래 여사님과 가족들은 소박한 가족장을 원했다”며 “그런데도 여성단체, 정치계, 종교계, 통일단체 등 각계 사회단체에서 이렇게 여사님을 보내드릴 수 없다며 사회장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특히 이 여사가 핵심적으로 활동한 YWCA 등 여성계의 주장이 사회장으로 결정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장례식이 사회장으로 엄수될 만큼 고인은 대통령의 정치적 보조 역할로 인식되는 영부인보다 사회운동가로서의 상징성이 더 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여사 자신도 “여성운동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여성 운동은 고인의 평생을 바친 활동이었다.

‘한국YWCA연합회’의 총무를 맡아 ‘혼인 신고를 합시다’ 캠페인을 벌였고, 196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축첩자 낙선 운동을 했다. 가족법 개정을 이끌어내 호주제 폐지에 영향을 줬다. 1999년 한국여성재단 출범에도 기여했다.

민주화 운동에도 큰 공이 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의 전신인 ‘양심수가족협의회’를 만들어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로 감옥에 갇힌 대학생들의 가족과 함께 석방운동을 벌였다.

이외에도 결식아동을 위한 사회봉사 단체 ‘사랑의 아이들’을 설립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2015년에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역대 영부인의 장례식은 대부분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 최규하 전 대통령 부인 홍기 여사는 모두 가족장으로 장례식이 엄수됐다.

다만 영부인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만이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1974년 8월 17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육 여사가 별세한 밤 청와대에 모인 국무위원들은 국장으로 9일장을 지낼 것을 건의했으나 박 전 대통령의 반대로 더 낮은 예우의 5일장·국민장으로 조정됐다.

박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였고, 함께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상태에서 피격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장례식이 거행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인의 사회장은 발인이 예정된 14일 현충원에서 2000여명 규모로 치러진다. 여야 5당 대표들의 추도사도 있을 예정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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