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북한 핵전략이 파키스탄식? 아니야, 완전 소련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7일 14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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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비핵화 협상이 장기화되는 형태를 보이면서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올해 진행된 비핵화 과정에서 김정은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상적으로 제시하긴 했지만, 그 동안 비핵화조치로서 북한에서 실제로 제시한 조건들은 핵실험장, 미사일 실험장, 핵시설 등 ‘미래핵’에 관련된 조건들이었고 아직 구체적으로 ‘현재핵’에 대한 폐기 조건은 제시된 바가 없습니다.

국제정치는 선의보다는 행동에 근거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한국 입장에서는 여전히 북한이 현재핵의 보유와 제재해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한다는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의 비핵화 동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교에서는 언제나 최악을 준비하는 플랜B, 플랜C 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모델과 북한 상황의 유사성 및 차이점은 무엇이고 한국 입장에서 북한이 파키스탄 모델을 따를 위험성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A.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시켰고 핵무기를 공세적으로 활용하는 교리를 가졌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무기를 묵인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이 핵무장을 지속한다면, 파키스탄 모형보다는 소련 모형을 마음에 둘 개연성이 높습니다.

파키스탄의 사례가 핵무기와 관련된 북한의 행보를 이해하는데 종종 언급됩니다. 2018년 봄부터 북한이 비핵화를 언급하지만 실제 핵무기를 폐기하는 수순을 밟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전문가는 북한이 파키스탄 모형을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파키스탄 사례가 언론에서도 종종 언급되면서, 한반도의 평화에 관심을 가진 청년도 북한의 미래 모습이 파키스탄과 비슷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듯합니다.

현재 파키스탄은 사실상 핵무기보유국입니다. 국제사회가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파키스탄의 비핵화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습니다. 1998년 5월 파키스탄의 핵실험에 대응하여 국제사회가 무기수출중단, 원조중단, 신용대출 중단, 핵무기로 전용 위험이 있는 제품의 교역 금지 등을 가했지만,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제제재를 사실상 해제하였습니다. 파키스탄의 핵무장에 대한 우려보다는 파키스탄이 테러 은신처가 될 위험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짐에 따라, 국제사회는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용인하고 파키스탄을 테러와의 전쟁에서 동맹국으로 대우했습니다.

북한이 파키스탄의 경로를 밟을 수 있을까요? 세 측면에서 어렵다고 보아야 합니다. 첫째, 핵능력의 측면에서 북한은 파키스탄보다 고도화되어 있습니다. 파키스탄이 최대 사거리 2,700Km로 추산되는 Shaheen-III 중거리 미사일을 보유하며 농축우라늄을 사용하는 핵무기만 가지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반면, 북한은 최대 사거리 1만 Km가 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지며 수소폭탄에 근접하는 증폭핵분열탄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북한의 핵교리가 파키스탄보다 더 공격적이었습니다. 파키스탄도 상대방이 핵무기를 사용하기 전 먼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지만, 상대방의 공격에 대한 보복 공격을 천명함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도발을 막는 억지 수단으로 핵무기를 상정합니다. 반면, 북한은 2012년 핵무기부대를 전략로켓군(현재 전략군)이라는 독자적 군으로 편성하였고 핵무기를 선제적 공격 수단으로 사용할 군사계획을 발전시켰습니다. 2013년 한반도 위기와 2016년 목함지뢰 위기에서 드러났듯이, 북한은 핵선제공격을 공공연히 천명했습니다.

셋째, 국제사회와 북한이 공통의 전략적 목표를 가질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2000년대 초반 국제사회는 남아시아의 핵확산보다 테러와의 전쟁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파키스탄의 핵무장을 사실상 용인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국제사회와 북한 간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요? 부상하는 중국을 포위하는 공동전선구축의 명분 아래 국제사회가 북한과 화해를 하는 경우의 수를 상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2017년까지 북한의 행보는 소련의 사례와 가장 비슷합니다. 소련은 핵탄두를 보유한 후 핵전력을 급격히 발전시켜 8년 후 대륙간탄도미사일, 12년 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가졌습니다. 핵무기 부대를 전략로켓군이라는 독자적 군으로 편성하였고, 1960년대까지 핵무기를 공격용 무기로 활용하는 군사 교리를 가졌습니다. 북한도 핵실험 후 매우 빠르게 핵능력을 증강시켰고 공세적 핵교리를 가졌습니다. 핵능력 증강 경로와 핵교리를 종합하면, 소련형 핵무장 경로가 북한에 수입되었다고 추정됩니다.

북한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까요? 향후 북한의 언술과 행동이 북한이 밟을 경로를 추정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만약 북한이 핵군축과 한반도의 비핵화를 계속 강조한다면, 북한 전략가의 마음에는 소련형 핵보유가 들어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원칙에서 언급하지만, 한반도의 비핵화가 쉽게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핵군축을 언급하지만, 미국이 북한의 핵군축 제의를 받지 않기 때문에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반면, 북한이 자국의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국제사회로부터 얻어내는데 집중한다면,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의지를 가진 상태에서 정치적 보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국제사회가 북한의 기대와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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