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미국 일자리도 없앨것”… 美내부 비판여론 활용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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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통상 마찰]트럼프 무역공세 대응전략 어떻게

미국이 한국을 포함한 12개국의 철강 제품에 53%의 관세를 매기는 고강도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내놓은 가운데 미국 내에서 자국 일자리를 줄이는 무리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이 미국 내부의 비판적 여론을 활용해 통상압박을 돌파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현지 시간) 사설을 통해 철강·알루미늄 고관세가 미국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미국인의 일자리를 앗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WSJ는 “상무부의 권고안들은 미국 내 건설, 교통, 채굴 비용을 높일 것”이라며 다른 산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 “미국發 ‘철강펀치’ 자국 노동자가 맞을 판”


사설은 이어 “현재 철강업계 노동자는 16만 명이지만 철강을 소비하는 여러 업계의 노동자는 그 16배에 달한다”면서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수입 철강에 고관세를 부과했을 때 약 20만 명의 미국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일자리 감소 피해를 봤던 지역은 오하이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해당한다. 이어 철강과 알루미늄 가격이 오르면 많은 제조업자들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러스트벨트 지역 언론인 디트로이트뉴스도 이날 “수입 철강제품 규제안이 발표된 16일 포드모터스와 제너럴모터스 주가가 폭락했다”며 “보호무역이 국내 제조업자의 생산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표출된 것”이라고 전했다.

○ 자국 이기주의에서 시작된 무역전쟁

미국발 통상 압박은 늘 미국의 이익 극대화라는 목표에서 시작됐다. 2002년 미국은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중국 등을 상대로 철강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제재를 당한 국가들은 다같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WTO는 미국의 피해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결국 미국은 세이프가드를 철회했다. 미국으로서도 다국적 공조에 무리하게 대응하기는 쉽지 않았던 셈이다. 이번 미국의 통상 압박에 대해 한국이 독자 행동을 할 게 아니라 같은 처지에 있는 국가들과 연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일본을 밀어붙였던 통상 압박도 한국이 참고할 만한 사례다. 1981년 미국은 자국 자동차 업체들이 적자를 보자 일본에 자동차 수출을 규제하라고 요구했다. 실제 일본은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량을 연간 165만 대로 제한했다. 일본산 자동차 공급이 줄어들자 미국산 자동차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작 미국 소비자들은 1984년 한 해에만 3억5000만 달러의 손해를 봤다. 반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고급화 정책으로 선회해 미국 고급차 시장을 장악했다. 레이건 정부는 자동차 물량 제한 정책을 폐지할 수밖에 없었다.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 고급 소비시장을 공략하는 중장기 계획을 짜야 무역전쟁에서 승산을 높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정·관계와 재계를 설득하라”

국제 공조와 고급화 전략만으로 지금의 통상 압박을 이겨내기는 어렵다. 트럼프 정부의 압박 강도가 훨씬 강하고 예측불허의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1986년 이후 미국이 한국 대상으로 수입규제 조치를 내린 것은 총 65건이다. 이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2017년 1월 이후 새로 가해진 규제가 10건(15%)에 이른다.

특히 미국이 15년 이상 제재 수단으로 쓰지 않던 세이프가드 카드를 꺼내 한국의 태양전지, 세탁기 산업을 겨냥한 점이 우려스럽다. 세이프가드는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거나 피해 가능성이 높을 때 발동한다. 미국은 2002년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을 상대로 철강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가 WTO에서 패소한 이후 이 카드를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 관세를 무리하게 높이는 조치도 WTO 규정에 걸린다. 트럼프 정부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며 WTO로부터 예외적인 규제로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내 비판적 여론을 활용하는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협상 전공 교수는 “미국의 조치가 중장기적으로 미국 전체 산업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며 미 상무부, 백악관, 철강업계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의 미국에 대한 선입견에 갇혀 있지 말고 미국을 원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은지 wizi@donga.com / 세종=김준일·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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