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제의 된장찌개 손맛 끝내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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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그린의 전설’ 함께 일군 스윙코치 남편 남기협씨

“내가 스윙을 10분 하면 그는 30분을 고민하며 연구했다. 그가 나보다 늘 세 배 이상으로 노력해 줬기에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골프 여제’ 박인비(27·KB금융그룹).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대기록을 달성한 그는 4일 인천공항에서 가진 귀국 기자회견에서 남편이자 스윙 코치인 남기협 씨(34)에 대한 각별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날 공항에는 수십 명의 취재진이 박인비에게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함께 귀국한 남 씨는 박인비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큰 가방만 지키고 있었다. 평소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에 외부 노출을 꺼렸던 남 씨는 “어제 시상식에서 인비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처음 봤다. 골프채를 잡고 세웠던 최종 목표 가운데 하나를 이뤄 감격했던 것 같다. 나도 코끝이 찡했다”면서 “모두 인비가 잘한 것이다. 내 얘기는 별로 할 게 없다”고 말했다.

박인비가 세계 정상의 골퍼로 거듭나는 데 프로골퍼 출신인 남 씨가 일등공신이었다는 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박인비는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 후 4년 가까이 미국 LPGA 투어에서 무관에 그쳤다. 골프를 그만둘 위기에서 박인비는 고교 시절 미국 로스앤젤레스 전지훈련 때 처음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한 남 씨에게 “함께 투어를 다녀 달라”며 구원을 요청했다. 당시를 회상하던 남 씨는 “결혼 전인 데다 잘 다니던 직장(골프장 경기과장)도 그만둬야 했기에 망설였다. 하지만 인비를 위한 길이었고 양가 부모님이 모두 흔쾌히 허락하셔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2011년 8월 약혼한 이들은 동반자로 전성기를 만들어 가다 지난해 10월 결혼했다. 박인비는 “오빠 덕분에 도살장 같던 골프장이 낙원이 됐다. 내 스윙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작은 문제점이라도 바르게 잡아준다”고 말했다.

남 씨는 “골프 선수로나 아내로나 인비는 모두 100점이다. 주위 사람을 너무 편하게 해주고 배려심이 깊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결혼 후 달라진 점이 없느냐는 질문에 남 씨는 “집에 있을 때 인비가 주부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된장, 김치찌개는 기본이고 북엇국과 갈비탕도 잘한다. 원래 나는 풀(채소)을 좋아하고 인비는 고기를 즐겼는데 요즘은 서로의 입맛이 비슷해졌다”며 웃었다. 2세 계획에 대해서는 “올림픽이 열리는 내년까지는 계획이 없다. 인비가 잘하고 있으니 천천히 아이를 가지려 한다. 나중에 딸이 생겨 본인이 원한다면 골프를 시키려고 한다. 남자 선수는 나도 해봤지만 너무 힘들고 세계무대에 뛰어들어도 성공 확률이 낮다. 아들에게는 골프를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7일 제주에서 개막하는 삼다수 마스터스에 출전하는 이들은 다음 주 경북 경주에 있는 남 씨의 본가에 인사를 드리러 갈 계획이다. 어느덧 남 씨 역시 유명해졌을까. 인터뷰를 마칠 무렵 한 여성 여행객이 “박인비 프로 남편이시죠. 축하드려요”라고 인사했다. 남 씨는 쑥스러운 듯 “감사합니다”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인천=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박인비#그린의 전설#스윙코치#남기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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